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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2023년 국내 작가 최초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의 자전적 SF 연작.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같은 전통적인 자전소설을 떠올리면 자전소설과 SF가 함께 놓일 수 있다는 게 쉽게 상상이 되진 않는다. 고등교육법, 일명 강사법 개정안을 앞두고 시위 중이던 대학강사인 '나'는 농성 천막 안에서 반년을 풍찬노숙중인 '위원장'이 천막에 나타난 문어를 삶아먹은 일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잡혀가게 된다. 이 문어는 이 '말'을 반복한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현재 정보라의 삶이 뿌리내린 포항과 죽도시장의 역사와 SF는 이렇게 버무려진다. 죽도시장에서 '도와주시오(Помогите)....'라고 호소하는 러시아 대게를 만나고, 구룡포 바다에 원자력발전소 폐수를 투기하는 일에 항의하다 '검은 덩어리'들과 마주치면서, 바다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다에 사는 생물에 대한 이야기로, 지구와 세계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미사일이 무사히 바다로 떨어졌다는 기사를 보고 안심했던 나는, 이 소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바다생물들에겐 그 미사일이 얼마나 날벼락일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 원자력 오염수 방류, 핵실험 같은 소재를 넘나들며 정보라는 이 세계를 사랑하는 일은 곧 싸우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 속 사람들처럼 이 사람들은 심각한 와중에 엉뚱한 말을 하고, 멀미가 나 토를 하면서도 다시 일어서 싸운다. 잘못된 일을 앞에 두고 잘못됐다고 울 줄 아는, '열받으니까'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나를 끓이지 않아서 고마워요.'(53쪽)라고 말하는 러시아 대게 '예브게니'의 말줄임표 붙은 말투가(이 이름은 러시아 소설 속 파멸적인 운명을 앞에 두고 대책없이 고집이 센 인물의 이름처럼 들려서 한층 애처롭게 느껴진다.) 사랑스럽다. 우습고, 슬프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이 세계를 정보라처럼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