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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을 하염없이 걸었다. 손에는 음료수 또는 과자 봉지를 들고 짝을 이뤄 한 바퀴, 두 바퀴 걷다 보면 점심은 소화가 다 되고 5교시를 준비해야 했다. 그 시절 했던 유일한 운동이다. 이야기 속 아이들도 걷기 시작했다. 걷기 클럽에 가입한 이유도 가지각색. 운동을 위해서 걷기 클럽에 가입한 건 재희밖에 없다. 계기가 가지각색인 만큼 4명의 마음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도 다 다르다. 아이들은 호수를 빙글빙글 돌면서 꽁꽁 숨겨두었던 마음의 상자를 조심스레 풀어낸다.
걷기는 별 것 아닌 운동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걷기 지칠 때 뒤에서 손가락 하나로 등을 밀어준 강은의 말처럼 "별거 아닌 거 같아도 도움이 된다." 고작 손가락 하나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누가 앞서가는지가 중요한 경쟁이 아닌 함께에 초점이 맞춰진 걷기 클럽 안에서 아이들은 친구가 된다. 나아질 수 없을 줄 알았던 각자의 응어리도 서서히 녹아내린다. 아무것도 아닌 일인양, 열세 살을 넘어 열네 살을 기대하게 만든다.
<헌터걸>, <오백 년째 열다섯> 등을 집필한 김혜정 작가는 자신의 걷기 경험을 녹여내 어린이 독자에게 말을 건다. 손가락 하나의 힘처럼 작은 움직임이 꽤 많은 걸 괜찮게 만들어 줄 거라고. 오늘은 나도 힘차게 걸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