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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바닷가 도시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의 일상이 그녀가 찾는 공간에 따라 펼쳐진다. 소설은 그녀의 이름을, 이 곳에 정착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에서 장면이 이동하듯, 보도에서 시작해서 사무실로, 서점에서 바다로, 다시 길이었다가 기차로, 일 년의 계절동안 이 도시에서 그녀가 존재하는 46개의 공간들이 이어진다. 이 물리적, 마음 속 공간에서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사색하고 묻는다.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의 최신작이자,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쓴 첫 소설이다. 이미 이탈리아어로 두 편의 산문집을 펴낸 그녀는, 다른 언어로 망명한 이유에 대해 '창작에 있어서 안정감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이런 단어의 관계 속에 나는 다시 처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날 세상에 내려놓는 말들이다."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계속해서 이동하고 변화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정체성의 불안을 섬세하게 묘사한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