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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거리를 걷다가 지치면 벤치 한구석에 앉아 트라클의 시를 읽다가 문득 삶이란 어떤 순간에도 낯설고 무시무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없이 걸었다> 中) 1992년 이후 독일에 이주하여 25년째 이국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시인 허수경이 여섯번째 시집을 엮었다. 시인듯, 산문인듯, 유장한 말이 시간의 지층을 탐사한다.
짐가방을 잔뜩 들고 돌길을 걷다 숙소를 잡고 시를 읽고 다시 자리를 옮긴다. 여정은 계속되고 감각은 스쳐 지나간다. 강렬한 여정의 기억도 결국엔 흐릿해질 수밖에 없듯,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지독한 봄날의 일/그리고 오래된 일" (<오래된 일> 中)이 되고 만다. 그렇게 지나간 자리에서 더듬대며 회고하는 기억들. 스스로 묻고 다녔던 이국의 거리와 광장과 역에서, 그렇게 떠돌면서 62편의 시가 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