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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했을 때 손가락을 바늘로 따듯 아주 극소량의 피만으로 수백 가지의 질병을, 그것도 집에서 직접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회사의 가치는 10조 원에 달했고, 20대의 젊은 CEO 엘리자베스 홈즈는 그렇게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기술로 세상 모두를 속였던 것이다. 2015년 10월, 월스트리트저널의 특종 기사로부터 이 거대 사기극이 폭로되기 시작하자 홈즈는 촉망받는 기업가에서 중대 범죄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억울해하던 홈즈는 물론, 사라진 기업 테라노스에 연루됐던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그 모든 게 소설이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온갖 군상을 마주한다. 강박적으로 야망을 좇던 한 개인, 제2의 스티브 잡스라 칭송하던 미디어들, 후원자임을 자처하며 쉽게 돈을 맡긴 정치인과 투자가들, 용기를 잃지 않은 내부 고발자들, 그리고 끈질긴 방해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진상을 밝히고 책을 완성해낸 저자 존 캐리루까지. 책은 한낱 가십성 기업 사기극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경영의 관점에서는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리더의 탐욕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투자의 관점에서는 어떤 기업을 잘 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말이다. 어쩌면 그 믿음의 대가는 100조로 치달았을지도 모른다. 존 캐리루의 저널리즘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