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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는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다. 번잡한 도시 서울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시간의 단절을 보여주듯 뚝 떨어져 세상과 담을 쌓은 모습이다. 서울 한복판이니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지만, 막상 그곳에 들어서는 일은 일상이 아니라 이벤트로 여겨진다. 구중궁궐이라는 말은 어쩌면 오늘날 더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궁궐에 들어서면 신선한 기분을 느끼고 들뜬 마음도 이내 차분해진다. 바깥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이 전하는 매력은 꾸준히 사람을 궁궐로 불러모은다. 이 책은 이렇게 찾아오는 이들에게 두 가지를 제안한다. 보는 것을 넘어 읽어내자고, 그럼으로써 죽은 궁궐을 되살려내자고. 굳건히 살아남은 구조와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사라진 흔적과 이어질 사연을 상상한다면, 비록 죽었으나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전한다.
상권에서는 궁궐이 어떻게 서울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임금이 사는 곳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후 서울의 다섯 궁궐은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 살펴보고, 하권에서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 다섯 궁궐을 촘촘하고 입체적으로 보고 걷고 읽어낸다. 500년 조선왕조의 정점이자 핵심이라 할 궁궐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니, 이내 보는 것을 넘어 읽어내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이 가을이 지나기 전에 찾아가 읽어보리라, 그리하여 되살려보리라, 괜한 의지가 마음에 차오른다. 마치 내가 살기라도 했던 곳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