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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게 되며 태희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라게 되었다.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희는 어쩐지 애도와 대면하지 못한다. 태희는 대신 모든 걸 미루고만 있다. 회사 일도, 친구 생일 축하도, 산부인과 진료도, 김선우와 헤어지는 일도. 내 시간이되 내 것이 아닌 시간을 되짚으며 태희는 그 시간에 아직 머물러 있을 나를 만나기로 한다. 자신을 두고 싸우던 엄마와 아빠, 자기들에게 안전한 질문만 하던(35쪽) 어른들. 아이들을 차별하던 선생님, 일기에는 쓸 수 없는 '선생님이 뽀뽀하라고 했어요'라는 말. "어떤 일을 겪고 한참 지난 뒤에야 그때 내가 느껴야 했던 건 부끄러움도 자책도 아닌 모욕감이었다고"(90쪽) 되짚는 시간들. 그 시간이 지나야 나는 내가 될 수 있다.
고통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고통에게 결코 꺾이지 않던 여성들의 이야기. <이제야 언니에게>,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의 소설로 우리는 최진영을 기억한다. <내가 되는 꿈>을 꾸는 이들은 편지를 주고 받고, 일기를 쓴다. "말은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져도 글자는 남"(86쪽)는다. 쓴다는 일은 그 어느 시간에 아직 머물러 있는 나를, 모욕당하고 잊힌 나를 그대로 바라보고 기억하는 일. "괴팍한 불안이 혼자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소설을 쓸 수 있다. 쓰다 보면 견딜 수 있다"(작가의 말)라고 말하는 단단함과 함께 주먹을 꼭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