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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만나는 정이현 소설집. 동시대의 한 순간을 날렵하게 포착하던 그의 눈이 우리의 시대를 소설집의 제목을 통해 명명한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는' 시대. 직원 매뉴얼에 따라 일단 깊이 머리를 조아리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해대니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아진 시대(<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中)를 우리는 살아간다. 폭력보다 더한 멸시가 습관화된 세상은 예의바르고 무력하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에서 읽혔던 발칙함은 세계를 보는 날카로운 눈으로 대체된 듯하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불행한 삶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정이현이 묘사하는 사람들은 계획하고 소비하지만 영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전세금이 올라 집을 사는 '멋없는 생활'로 삶의 양태를 바꾸었다. 피로한 악의 대신 상냥한 폭력을 전하는 우리의 시대를 정이현이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