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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죽이고 도망친 살인자 카인은 세상을 떠돌며 구약성서 속의 사건들을 만난다. 이 이단자가 바라보는 구약의 사건들은 성경에 기록된 방식보다 더 비루하고 의문에 가득 차 있다. 소돔 시민들은 여호와가 쏟아부은 불세례에 타 죽었는데, 죄를 지은 이들이야 그렇다치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왜 함께 죽어야 했는가? 여호와는 바벨탑을 지어올리던 인류의 언어를 뒤섞어버리고 탑을 무너뜨렸는데, 애초에 뭘 해도 신 미만의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건방짐'이 그토록 커다란 죄였을까? 주제 사라마구는 카인의 시선을 따라 구약성경 속의 사건들을 파헤쳐 신의 불가해한 판단들을 끄집어낸다.
이 속성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인간을 만들었으므로, 역으로 인간의 지닌 죄악의 경향을 신 역시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지상에서 엉망인 바와 같이 하늘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C.S.루이스가 말했듯 신의 선악 개념은 인류의 판단 방식과 완전히 달라서 인간의 정의로 신의 정의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 또는 카인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절대 권력 아래에서 부조리한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진리'를 의심하고 풍자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아무도 신에 도전할 수는 없으므로, 주제 사라마구는 그 벗어날 수 없는 압제 속에서 더 잘,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전달해준 셈이다. 에덴 동산의 뱀으로부터 출발한 불경한 지혜의 오랜 역사가 이 책 속에서 느긋하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