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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없는 하루는 햇빛 없는 하루와 같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파스타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진짜 이탈리아를 찾아 떠난 75일간의 파스타 로드
[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는 75일간 작은 자동차에 몸을 싣고 이탈리아를 종단한 ‘파스타 문화 읽기 대장정’으로 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부둣가의 서민적인 식당까지 각양각색의 도구와 기계를 활용하는 파스타 공방에서 오로지 두 손만으로 마술처럼 면을 뽑아내는 시골집의 작은 주방까지 이탈리아 파스타 문화 전반을 폭넓게 보여준다. 대강의 경로만 정해두었을 뿐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여행이었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특유의 화끈함과 쾌활함으로 기꺼이 자신의 주방을 공개하고 가족 식탁의 한 자리를 내주고 밀가루 반죽부터 소스까지 각양각색의 파스타 조리법을 세심하게 가르쳐주었다. 저자가 찍어온 수백 장의 사진에는 이탈리아인들의 넉넉하고 건강한 웃음이 가득하다. 파스타는 그 모양새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의 지혜를 담고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장인들만을 악착같이 찾아다닌 덕분에 저자는 이탈리아 각지의 문화와 환경이 고스란히 반영된 개성 있는 파스타와 몇 대에 걸쳐 고유의 맛을 지켜가는 사람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인을 알고 싶으면 그들과 함께 식탁에서 파스타를 먹어라.”라는 속담처럼 그저 파스타의 세계가 궁금해 떠났던 여행은 어느새 파스타를 통해 이탈리아 문화를 발견해가는 한층 풍부한 의미를 띤 여정이 되었다. 또한 저자는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만들어온 이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긍정성에서 자신의 여행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새 삶의 자양분으로 만들어갈 태도를 배우고 돌아온다. 이 책은 저자의 여행기뿐만 아니라 지역별 모양별 파스타의 종류와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소스 파스타를 만드는 밀가루 등 파스타 전반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담고 있어 ‘이야기가 있는 파스타 백과사전’이라고도 부를 만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두꺼운 메뉴판을 두려움 없이 열어볼 수 있을 것이다.
[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의 다양한 맛
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시골 마을의 작은 주방까지 발로 뛰며 배운 이탈리아 파스타의 모든 것 여행에 앞서 이탈리아 각지의 파스타 문화를 꼼꼼히 조사한 저자는 북부 중부 남부를 대표할 수 있는 파스타들을 고르고 그것들을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지역을 찾아 중심 경로를 짰다. 캄파니아 시칠리아 토스카나 에밀리아-로마냐 리구리아가 이렇게 해서 정해진 5개의 주(州)이다. 이와 함께 대량 생산된 건파스타보다는 그 자리에서 손으로 만든 기왕이면 오랜 세월 작은 주방을 지켜온 할머니가 만든 생파스타를 찾기로 교통수단과 숙박은 렌트한 자동차로 해결하기로 여행의 원칙을 정했다. 저자가 먼저 찾아간 곳은 작은 마을의 작은 주방이 아니라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의 상점과 시장 레스토랑이었다. 도시인들이 일상에서 파스타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경험하지 않으면 각 지역의 전통 파스타를 보더라도 제대로 된 비교를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오드리 헵번도 다녀간 100년 된 파스카 가게를 찾아가 파스타의 전반적인 제조 과정을 지켜보았다. 피렌체에서는 미리 약속까지 해둔 두 곳에서 차갑게 퇴짜를 맞아 고수의 손놀림은 멀찌감치 서서 지켜만 보고 식당에 앉아 주문한 파스타를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베네치아에서는 43년간 부둣가 인부들의 친구로 한자리를 지켜온 식당에서 싼 가격에 고봉밥처럼 수북이 담아주는 파스타를 받아들고는 이탈리아인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든 파스타의 맨얼굴을 보았다. 이후 자동차를 렌트한 저자는 남부의 캄파니아 주에서 본격 파스타 여행을 시작한다. 구체적인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에 우선 치즈로 유명한 마을을 찾아가 그곳 사람들에게 파스타에 관해 묻는 식으로 여행을 풀어간다. 캄파니아에서는 부팔라 모차렐라 치즈로 유명한 카파초 마을에서 50년간 파스타를 만들어온 조세핀 할머니의 파스타 공방을 소개받아 푸실리 카바텔리 라비올리 등 다양한 파스타를 보았다. 이어서 캠핑장 주인집 딸인 피오렐라네 가족 모임에 따라가 할머니에게 쇠막대에 감아 나선형으로 굴려 만드는 캄파니아의 전통 파스타 푸실리를 배웠다.
도르르 도르르. 새끼손가락 길이 정도로 똑똑 떼어놓은 반죽을 얇고 기다란 쇠막대의 한가운데에 살짝 눌러 감은 뒤 도마 위에서 두 번쯤 굴리면 어느새 반죽이 쇠막대 전체를 감싸며 말렸다. …… 하지만 내가 굴린 반죽은 도마 바닥에 척 들러붙었고 쇠막대는 그사이에서 마냥 헛돌기만 했다. …… 가만 보니 할머니의 손은 손바닥 아랫부분만 바닥에 붙어 있고 손가락은 살짝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게 보이지 않는 원리였던 거다. ‘손바닥 끝의 두툼한 부분으로 막대를 굴리다가 마지막에는 공기가 들어가게 살짝 밀어내기.’ - 116~119쪽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의 남쪽 끝에 위치한 섬 시칠리아. 브론테 마을에서 캠핑장을 찾아가던 길에 만난 밀레나를 따라 이번에도 그들 가족의 주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마리아 할머니에게 배운 파스타는 그 지역 저수지에서 흔히 자라는 갈대 준코를 이용해 만드는 지극히 토속적인 방식의 마카로니였다. 브론테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라구사 마을에서는 그때껏 방문했던 곳들과 달리 [론리 플래닛]과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유명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일 바로코’에서 시칠리아의 전통 파스타 카바티를 보았다.
기계는 어렸을 적 책상 모서리에 압축 고무로 붙여놓았던 은색 철제 연필깎이처럼 작업대 끝에 고정되었다. ……그 두껍고 기다란 반죽이 기계의 나무 축 위에 올려졌다. 딸깍 딸깍 딸깍 오르골에서 흘러 나오는 정확한 리듬처럼 할머니는 오른손으로 기계의 축을 잡고 왼손으로는 반죽을 들어 한 줄씩 쑥쑥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셨다. 그러자 반죽은 금세 줄무늬가 있는 파스타로 바뀌어 반대편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금 더 기다란 이 면이 바로 시칠리아의 전통 파스타인 카바티(cavati)였다. - 147쪽
다시 육지로 돌아온 저자는 중부의 토스카나까지 곧장 달려간다. 이곳에서 봐야 할 파스타는 면발이 우동처럼 두꺼운 피치였다. 피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파스타라 유명한 지역으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시에나를 택했지만 어느 레스토랑을 가나 한결같이 하는 말은 “요즘엔 아무도 손으로 피치를 만들지 않아요.”였다. ‘손으로 만든 파스타’라는 원칙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저자는 미련 없이 시에나를 떠나 키우시 마을에 이른다. 하룻밤 묵어갈 생각에 들른 캠핑장에서 운 좋게도 손으로 피치를 만드는 레스토랑을 발견해 피치는 물론이고 얇고 넓은 면발이 ‘파르르’ 소리를 내며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파파르델레까지 직접 만들어볼 기회를 얻는다. 뿐만 아니라 아홉 살 혹은 그 이전부터 파스타를 만들었다는 프란카 할머니에게 100년 된 밀방망이를 선물로 받는다. ‘음식의 천국’이라 불리는 에밀리아-로마냐 주에서는 가야 할 곳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 봤던 동영상 속의 ‘아메리고 레스토랑’ 그곳에는 거대한 스폴리아(밀가루 반죽을 밀방망이로 최대한 얇게 밀어낸 것)를 능숙하게 밀어내는 안나나니 할머니가 있었다. 저자는 그곳에서 할머니를 따라 열심히 밀어낸 스폴리아로 배꼽 모양의 파스타 토르텔리니를 만든다. 그리고 주방장 데니스에게 밀가루에 으깬 감자를 넣어 만드는 파스타 뇨키를 배우고 그 유명한 볼로네제 소스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게 된다. 그다음 목적지는 스파게티를 즐겨 먹는 북부의 리구리아 주였다. 보글리아스코 마을의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하려던 저자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떠밀려 마음에도 없던 캠핑장 안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뜻밖에도 그곳은 또 하나의 신천지였다.
세상에! 여긴 뭐지? 이런 곳이 있었다니! 천지 사방이 그 지역에서 난 해산물로 넘쳐났다. 저게 해산물 스파게티야? 면 사이사이에 해산물을 섞어 내놓는 건 봤어도 해산물이 면을 완전히 뒤덮는 스파게티는 처음이었다. 서울에서도 그렇고 여기 이탈리아를 다 돌면서도 콩알만 한 칵테일 새우 몇 마리를 넣고 해산물 스파게티라고 우기던 것들만 봐왔는데 지금 눈앞에 놓인 건 바다 냄새를 그대로 끌어온 명실상부한 해산물 스파게티였다. - 303쪽
이곳의 요리사 안드레아에게 제노바의 전통 소스 바실 페스토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저자는 프라의 농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바실을 보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자기가 직접 따온 바실로 페스토를 만들어 그 근방의 전통 파스타 트로피에와 함께 먹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샐러드처럼 상쾌한 맛을 내며 입 안을 돌아다니는 이 파스타는 색다른 맛과 재미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해주었다. 이처럼 이 책에는 한 그릇의 맛있는 파스타가 하얀 천이 깔린 테이블에 놓이기까지 어떤 시간과 사람과 이야기를 거쳐 오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땀 냄새 짙게 밴 이 여행기를 통해 우리는 파스타를 단순히 음식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파스타 로드에서 만난 진짜 이탈리아 이야기 75일간 쉼 없이 달린 저자의 ‘파스타 로드’에는 이탈리아인들 특유의 햇살 같은 미소와 ‘안 된다’고 말하는 법이 없는 건강한 낙천주의 누구라도 끌어안는 넉넉한 마음이 넘실거린다. 거의 모든 방문지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소개로 정해졌고 여행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하면 누구라도 주방을 공개하며 손수 파스타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자기 집이나 가게가 파스타를 만들어온 역사를 소상히 들려주었다. 마치 파스타가 마법을 부리기라도 하듯 이탈리아 땅 어디를 가나 모든 이들이 진심을 다해 ‘길 위의 파스타 선생님’을 자처했다. 얼마 후 마카로니 접시가 물러나고 식탁은 오븐에서 구운 닭고기와 밀가루 옷을 입혀 튀긴 감자로 다시 채워졌다. 그러자 수십 개의 팔이 식탁 위에서 정신없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 혼자 지켜보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광경이었다. 이 거대한 가족이 나 한 사람 때문에 이 많은 음식을 다시 한 번 정성스럽게 펼쳐 보여줬다는 사실에 벅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두 할머니는 밀레나를 통해 토마토소스 만드는 법을 상세히 적어주셨고 다른 식구들은 마당을 나서는 나를 한 번씩 꼭 안아주었다. - 139~140쪽
안드레아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사진을 왜 그렇게 불편하게 찍느냐며 계속 주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 정신없이 메뉴가 날아다니는 전쟁 통에서 나는 최대한 주방 사람들에게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입구의 문턱에 모로 선 채 몸은 바깥으로 팔과 얼굴은 안쪽으로 밀어 넣고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안드레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방 안의 모든 사람이 “우린 정말 괜찮아!” 하며 친절함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바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곳이 주방 아니었던가? - 303~304쪽
이렇게 낯선 이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무엇이라도 함께 나누는 태도는 그들의 파스타 문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먹을거리가 풍부해 ‘뚱뚱한 도시’라고도 불리는 볼로냐에서는 시 정부 차원에서 전통 요리법을 수집해 책자로 만들어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가 찾아갔던 아메리고 레스토랑에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요리법까지 스스럼없이 가르쳐주었다. 기본적인 조리 방법은 같더라도 최종적인 맛은 만드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본을 지키면서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이탈리아인들의 유연함은 수백 가지 모양과 색깔의 파스타를 낳았다. 비슷한 재료로 비슷한 맛을 내더라도 종잇장처럼 얇게 밀어내기도 하고 나사못처럼 비틀어 꼬기도 하고 배꼽 모양으로 둥그렇게 굴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은 매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선천적인 유머 감각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저자에게 약도를 그려주고 친구를 소개해주고 심지어 자기 집으로 데려가기까지 하는 적극성에서도 삶의 모든 순간과 인연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다. 여행일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저자의 눈에는 점차 파스타만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음식과 사람이 어우러져 오랜 세월 가꿔온 그들만의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따라 혹은 할머니를 따라 파스타 만들기를 시작한다. 지중해성 기후에 해가 쨍쨍히 내리쬐는 날이 많아 집 앞에 커다란 판을 깔고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파스타를 만드는데 그곳은 온 동네의 소문이 모여드는 우리의 옛 빨래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니 파스타는 맛있는 한 끼의 식사가 되어줄 뿐 아니라 고단한 여성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장소도 마련해주는 셈이다.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아이들은 엄마들의 놀이 공간에 자연스레 드나들면서 할머니와 엄마의 파스타 비법을 전수받는다. - 197~198쪽
두 번째 여행인 만큼 저자는 짧은 만남에서도 곳곳에 스며 있는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무게와 깊이에 감탄하는 성숙한 여행자의 모습을 보였다. 할머니들의 사소한 손동작 하나 스무 명이 넘는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리는 뒷모습 오래된 밀방망이의 거친 질감……. 이런 사소한 순간 작은 모서리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저자의 섬세한 시선 덕분에 우리는 이 여행기 하나로도 이탈리아인들의 문화와 정서 분위기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조금 다르게 사는 서른셋 여자의 호기심 가득한 로드 무비 인생의 전환점이나 자아 발견 고통의 치유 등 여행의 동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보통의 여행기와 달리 저자는 파스타의 세계가 너무나 궁금해서 기왕이면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여행을 떠났고 여행기를 썼다. 이 여행을 기점으로 인생을 바꿔보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여행 이후 파스타 전문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갖고 뛰어든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은 궁금했고 자기 인생의 일부를 떼어내 그 궁금증 해소에 쓰고 싶었고 그것을 기록해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았다고 한다. 이제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니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갈 것이고 언젠가 또 궁금한 게 생기면 훌쩍 떠났다가 그 이야기를 안고 여행 작가로 다시 나타나겠다고 한다. 뭔가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꾸 캐내려 하고 이후의 인생 계획에 어쭙잖게 훈수를 두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마음대로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냥 알고 싶어서 다녀온 건데 왜 나한테 자꾸 이걸로 뭘 좀 해보라고 하고 대단한 사람 보듯이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냥 일자리 구해서 돈 벌고 집에 와서 쉬고 하는 삶으로 돌아갈 거예요. 내 생활을 책임질 수 있고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요. 책까지 낸 내가 왜 좀더 그럴듯한 일을 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저는 그런 생각 없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궁금한 게 생기면 또 떠날 거라는 거죠.” 저자의 말에서 최근 부쩍 눈에 띄는 자기 직업과 별개로 음악이나 그림 등 좋아하는 것을 삶의 일부로 계속 가져가며 프로페셔널에 버금가는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들은 일상의 중요성과 변화의 즐거움을 모두 아는 열정적이고 건강한 이들이다. 남들이 부여하는 허상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그런 열정과 건강함이 엿보인다. 저자는 자기 역시도 불안정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가 늘 불안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본 이탈리아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자기 삶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여러 지역의 크고 작은 레스토랑과 가정집 시장 농장을 돌아보면서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몇 대째 같은 가게를 이어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났다. 그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것 같겠지만 하루하루 자기만의 기술을 연마하고 같은 음식이라도 좀더 맛있고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매일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으러 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중요한 건 변화냐 반복이냐가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가 삶의 빛깔을 다르게 해주는 것이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소박한 질문과 발로 뛰어 얻은 진솔한 답으로 여행을 이끌어온 저자는 자기답게 여행의 의미도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자리라도 늘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담백한 한마디로 정리한다. 이 책은 대부분의 여행기가 그렇듯 한 번쯤 떠나보고 싶은 충동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늘 떠날 수만은 없는 우리가 그런 충동을 일상을 조금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건강하게 바꾸는 데 작은 힌트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