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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목화는 "많이 죽었어"라는 말 외에는 꺼내지 못했다. 그럴 때 목수는 "한 명을 살렸다"라고 기록했다. (100쪽)
2010년 첫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데뷔, 2023년 <홈 스위트 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의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사랑하는 이가 부재하는 세계의 적막을 기록한 <구의 증명>을 지나 이제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로 독자를 만난다.
열여섯 살이 된 목화는 현실처럼 생생한 죽음의 순간을 경험한다. 비참은 세계에 가득하여 사람들은 투신해 죽고, 차에 치여 죽고, 살해당하고, 노동하다 죽는다. 투신하는 이의 몸을 받아내던 순간, 목화는 자신이 단 한 사람만은 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백 수천의 죽음 중 목화가 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나무 이파리 하나 정도의 힘으로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중개'가 반복되면서 목화는 살리는 자의 숙명이 할머니인 임천자와 엄마인 장미수를 거쳐 자신에게 전승되었음을 알게 된다.
나무의 연대기와 인간의 계보가 설화처럼 엮여 있다. 이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왜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우리는 이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해가 지는 곳으로' 슬픔의 끝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이던 작가가 '10여 년간 붙들고 지낸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소설로 건넨다. 단 한 사람이 세계를 구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 믿음에 관한 이야기다. (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