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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말을 잃었다. 아이를 잃었고, 어머니를 잃었으니 말을 잃는 게 당연하다 상담가의 말에 여자는 말한다.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다고. 오래 전에도 여자는 말을 잃었던 적이 있다. 그녀를 깨웠던 건 낯선 이국의 말. 여자는 이번에도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를 택한다. 그리고 빛을 잃어가는 남자. 가족을 독일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친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 행간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정적인 의미들이 와글댄다.
<채식주의자>, <내 여자의 열매>, <바람이 분다, 가라>의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시적인 문장과 압축된 언어가 그 여자의 침묵과 그 남자의 빛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주어와 태를 결정하지 않고는 한 단어도 내뱉을 수 없는 희랍어처럼, 소설은 망설이고 조심스럽다. 예민한 기척과 절제된 언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미 죽은 말을 배우며 이들은 더듬더듬 서로를 스친다. 진실로 아름다운 소설, 오래 읽을수록 그 의미가 은은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