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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양경종은 열여덟 살이 되던 1938년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관동군에 배치된다. 이후 포로로 붙잡혀 소련군으로 강제 복무를 하다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었고, 이번에는 독일 군복을 입고 프랑스로 파병되었다가 미군 포로로 붙잡힌다. 석방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과거를 숨기고 살다 1992년 일리노이 주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구한 이야기지만, 6000만 명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주어진 행운(?)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 하면 대번에 히틀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떠오르지만, 전쟁사가 앤터니 비버가 그리는 전쟁사의 시작은 한 사람 양경종의 사연이다. 개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전쟁 속에서 개인의 삶을 속속들이 뒤바꿔버린 전쟁의 전면적 영향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을 일으킨 인간이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망가지고 견디며 새로운 출구(이자 다른 지옥으로의 입구)를 만들었는지를 읽다 보면, 비로소 이 전쟁의 총체와 세부가 드러나고,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이 엿보이고, 역사의 책임과 전망을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