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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고 시인 나희덕은 이 시집을 엮으며 말한다. 나무와 물고기와 공기의 시대가 있었다.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끌어안았던 태고, 그 저녁의 온기를 기억해낸 것뿐이다."라고, 미천하고도 감동적인 (전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생물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던 전작 이후,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생명을 이야기하던 시인 나희덕의 '피 흘리는 말'이 시집 안에 있다.
<파일명 서정시>라는 제목은 냉전기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꾼쩨를 감시하며 작성한 자료집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지나갔다고 확언할 수 없는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서정시로 증언한다. 시가 된 증인 B의 말.(<문턱 저 편의 말> 中) "할말…… 말이 있지만……그만……그래도……할 말이… 해야 할 말이……정신없이……살아나오긴 했지만……우리 반에서……저 말고는……아무도……구조되지 못했……친구들도………살 수 있었을……아무도……저 말고는 아무도……" 이 말줄임표 사이의 참혹을 상상하는 일이 삶을 할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추천의 글을 쓴 시인 박준의 말대로 "차마 사람으로 건널 수 없는 사람의 일들을 건너는, 힘이라 할 것도 없는 힘으로 다시 쓰는, 오늘 우리가 처음 만나는 나희덕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