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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한 시인, 잡균 섞인 절망보다 언제나 순도 높은 희망을 산 시인, 삶을 수시로 떠났다가 수시로 되돌아온 시인, 최승자. 32년 만에 다시 돌아보게 된 자신의 글을 두고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자문하는 시인은 이내 "그만 쓰자 끝"이라고 말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시인의 말을 더하고 고이 매만져 사유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은 대표 산문집을 다시 내놓는다.
시인은 '불안'과 '고독', 특히, '죽음'을 자주 언급한다. 죽음의 관념을 산산이 깨뜨려준 어머니의 죽음, 슬픔 가운데서도 작은 위안이 되었던 외할머니의 죽음, 하숙집 주인아저씨의 거짓말 같은 죽음, 외할머니댁의 머슴 일중이 아저씨의 죽음. 죽음의 경험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딛고 서서 삶을 똑바로 직시한다.
떠남과 되돌아옴,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 현실과 신비의 세계. 최승자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그의 삶과 그를 둘러싼 세계에 관한 단단한 기록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펄떡펄떡 뛰는 강한 생명력을 발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