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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은 조너선 프라이스는 자신이 침묵했던 어떤 시기에 대해 회상하며 눈을 감는다. "시체들을 실은 비행기는 바다로 갔지요 / 군인들은 시체를 철로 된 레일 토막에 묶은 뒤 / 천으로 싸서 바다에 던졌어요" (<묻다> 중) 나희덕의 시를 읽는 동안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을 묘사한 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다렸나. 체르노빌에, 제주에, 바다 깊은 곳에. 폭력을 기록하는 3부의 제목은 이러하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2020년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나희덕의 시는 절멸을 상상한다.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 봄부터 소쩍새가 아니라 / 7에서 13리터의 물이 필요하단다" (<장미는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중) 시의 숫자를 통해 장미가 남긴 기나긴 탄소 발자국을 가늠하게 하는 시. 왜 우리는 지금 나희덕의 시를 읽을까. 표제작 <가능주의자>에 실마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합니다
4부는 '달리는 기관차를 멈춰 세우려면'이라는 제목과 함께 묶여 있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긴 질문이 남을 것이다. 그 질문의 실마리가 될, 이 시를 엮은 시인의 말을 덧붙인다. 통증과 배고픔과 추위를 느끼는 영혼들 곁, "시는 영원히 그런 존재들의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