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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이후 8년 만에 만나는 임솔아의 장편소설. 삶은 최선의 순간 이후에도 이어진다. 가장 빛나던 시절이 가고 사랑과 투쟁의 목소리가 흐려진 자리,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한 전시장에서 만난 네 여성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화영은 장애 등급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의 '장애'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자인 친구들을 흉내내며 정체성 사이에서 겉돌던 우주는 오래 함께 한 여자친구 선미와 자주 싸우고 있다. 사이가 나쁜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빠른 취업을 택한 보라는 스테이크와 담배를 팔았고, 이제 다른 사람의 몸에 알밤을 타투로 새긴다. 그리고 이들의 가장자리 어딘가에 선 정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정수는 본연의 희미함 그대로 그들의 이야기 언저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빛나는 사람들과 빛나는 장소에서 빛나는 것을 이야기하던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삶을 계속할 수 있다. 장애인으로서 자신이 사회에게 받아야 할 것을 정의롭게 요구하던 석현의 얼굴이 남자친구로 나의 옆에 설 때는 다른 모습일 수 있고, 나를 학대하던 상사도 다른 포지션에선 너그러운 말을 할 수 있으며, 서로의 취약함을 돌보기 위해 함께 대열을 이뤄 싸우던 사람들도 상대방을 소진시키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임솔아의 소설은 기만을 고발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그저 곁에 서는, 더 좁고 어렵고 윤리적인 길을 택한다. "얼결에 우주도 그 곁에 섰다. 곁에 계속 서 있는 것. 그것이 보라가 말한 싸움이었다."(145쪽) 깊은 결심 없이, 큰 희생 없이, 뭉근하게 데운 와인 한 잔 정도의 온기로도 혁명이 계속될 수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삶 속에서 종종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