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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를 기억해내는 일이 갈수록 쉽지가 않다. 엄마 우리 저번에 그곳 어디였지? 아 거기 사과 산 데 있잖아. 그... 대명사와 명사 사이에서 헤메며 시니피앙으로 시니피에를 맞추려 과녁을 겨누어 화살을 쏘는 우리의 말들. 5년 만에 출간된 오은의 여섯번째 시집 <없음의 대명사>는 '그' 놀이에서 시작된다. 목차 1장의 그곳 - 그것들 - 그것 - 이것. 2장의 그들 - 그 - 우리 - 너 - 나로 이어지는 시의 제목들을 훑어보면서 말이 입에 머무르는 순간, 이미 시적이다.
11쪽에 실린 <그곳>을 구성하는 단어들. 여기저기, 이곳저곳, 이리저리, 이냥저냥, 이만저만, 이러저러, 이럭저럭, 이러쿵저러쿵, 이심전심, 울레줄레 고민과 체면과 사연과 미련이 오가는 동안 입 안에 침이 고이고 의미가 범람한다. 노래이자 장단인 시가 덜그럭거리면서 '그곳'에서 시작한 시가 '나'에게 온다. 그렇게 슬픔이 범람하다 마침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볼꼴이 사나운 것처럼'(135쪽 <나>) 웃음이 터져버리는 시. 오은처럼 소리 내어 읽는 이 순간, 볼품없고 안쓰러운 이 순간, 말이 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