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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무섭다.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는 데 드는 에너지도 큰데, 나와 정반대의 신념을 가진 상대방의 확신에 가득 찬 표정과 말투를 정면으로 받아낼 때는 오싹한 외로움까지 느껴야 한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역시 논쟁을 피하는 편이 효율적이라 느끼게 된다. 신념이 어긋나는 대화에서 아리송한 미소로 시간을 잠시 멈춘 뒤 슬그머니 화제를 바꾸며 '좋은 시간에 굳이 설전을 벌일 필요는 없지' 생각하는 나는 어른스러웠나, 아님 비겁했나. 이 책을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서문의 다음 문장 때문이었다. "시드니에서 보낸 유년기 몇 년 동안 나는 내 삶에서 논쟁을 몰아내고 오로지 사람들과 합의하려고 애썼다. 그 경험 덕분에 이견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맞장구만 치는 삶에는 옹색한 점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삶을 지속하려면 타협과 자기 배신을 너무 많이 해야 한다."
재치 있는 티키타카에 끼어들 영어 실력이 없어 끄덕이는 삶을 살던 저자는 더 이상의 자기 배신을 하지 않기 위해 토론을 시작했다. 여느 성공담처럼 드라마틱한 갈등과 발전 끝에 저자 서보현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 토론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을 거머쥔 디베이팅 챔피언이 되었다. 세계 최우수 토론팀인 하버드대 토론팀 코치까지 역임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배운, 공부한, 느낀 논리적 사유와 합리적 말하기의 기술을 아낌없이 펼쳐 놓는다. 무엇에 대해 말할지, 무엇을 위해 말할지, 어떻게 말할지. 그가 내놓는 전략들은 날카롭고도 실용적이다.
대학을 준비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크게 도움 될 것이다. 그러나 '토론이란 무엇인가', '좋은 토론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가'와 같은 스스로의 질문에 저자가 내놓은 묵직한 답변을 읽으면, 단지 무언가를 준비하는 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논쟁은 우리가 몸으로 싸우거나 그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경우와는 달리 스스로를 드러내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세상과 갈등할 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믿는 게 무엇인지의 경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경계를 발견하기 전에, 우리는 사회에서 들리는 가장 큰 목소리가 내 목소리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것이 어쩌면 가장 무서운 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