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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시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하와이로 떠난다. 그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의 십 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생전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이라고 제사를 반대했던 심시선이었고, 그의 후손들답게 심시선 여사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치르진 않을 예정이다. 두 번의 결혼, 서로 다른 성씨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정세랑의 사람들답게 올곧다. 가족 각각의 개성, 단정하고 부지런한 성품과 포기하지 않는 품성, 새와 바다를 사랑하는 다정한 시선과 테러 이후의 삶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마음. 그들의 면면을 거슬러 올라가면 '가모장' 심시선이 있다. '늘 소문과 분쟁에 휩싸여 사셨던' 등을 돌리고 선 여자. T면과 하와이와 뒤셀도르프를 거치며 늘 논쟁을 불러 일으키던 화가이자 작가,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는' 이 사람, 심시선을 기억해야 한다.
비극적인 천재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인연은 심시선을 '문제적 여성'으로 만들었다. 많은 예술가가 그랬듯 젊은 심시선은 뮤즈로서 소비되었고, 그의 얼굴과 몸은 그림 속에 갇혔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경험한 학살, 인간의 저열한 악의와 폭력, '모난 돌'인 그를 자꾸 내리치는 시선을 받아내면서도 심시선은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있는 예술가가 되는 길'(30쪽)을 택했고, 많은 말과 저서와 작품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자연스럽게 떠났다.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을 지나 '휘적휘적하지만 다정한 허수아비' 같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세상을 향해 계속 자신의 말을 전하며.
2010년 우리 곁으로 찾아온 작가 정세랑이 2020년을 맞아 이 시대를 위한 장편소설을 선보인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 이야기.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을 한 글자 바꾸어, 심시선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내며 작가 정세랑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어떤 계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러니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의 곁에 서겠다고 말하는 다정한 눈, <피프티 피플>의 손 하나하나를 잡던 그 눈으로 정세랑이 사랑을 담아 전한다. 김하나, 박상영, 김보라 추천. "존재한 적 없었던 심시선처럼 죽는 날까지 쓰겠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이 반갑고 고마워지는 소설. 정세랑의 다음 소설이 벌써부터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