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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로 한국에 알려진 페터 비에리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소설가뿐 아니라 철학자로도 잘 알려진 석학이다. 그의 철학 저작은 삶과 존엄을 중심으로 하는 3부작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지난해 번역된 <삶의 격>이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제대로 묻고 이해하지 못한 존엄성의 의미를 다뤘다면, 3부작 가운데 두 번째라 할 이번 책은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자기 결정을 제시한다.
자기 결정은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다른 이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 스스로 어떤 신념을 갖고 살아갈지를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그는 소설가답게 이 과정에서 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인간이 삶을 이끌어가는 다양한 모습을 살피고 그런 삶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문학이라는 여유로운 가능성의 장에서 가능하다. 여기에서 그가 강조하는 개인의 정체성이 문화적 정체성임을 알 수 있다. "타고난 것들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도 이 맥락에서 살펴야 오해가 없겠다. 결국 삶은 스스로 써나가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