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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권력의 중심부에 섰던 남자는 돌연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그의 새로운 거처는 핵 전쟁의 공포가 절정일 때 지어진 후 방치된 '핵셸터'로 늪지대에 자리하여 사회와 완벽히 차단되어 있다. 인류 멸망을 예감한 그는 여생을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것"인 고래와 나무를 위한 대변자로서 살아가기로 한다. 이들과 교감하고 그 혼에 호소하며 마침내 인간 최후의 속죄를 전하기 위하여.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깊은 눈을 가진 그의 아들도 이곳에서 무수한 들새 소리를 듣고 생전 처음 자발적으로 말을 내뱉으며 활기를 찾는다.
명상과 자라나는 나무 관찰, 고요한 습지 풍경, 새소리로 채워진 단조롭고도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은 갑작스러운 외부의 소란으로 깨어진다. 핵셸터 근처에서 경찰과 군이 보유한 총기 탈취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기획한 청년들은 곧 대지진이 일어나 시대가 붕괴할 것이라 예측하고 그날을 대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기존 질서를 일탈해 사회의 주변부에서 스스로 '자유항해단'이라 명명한 청년들의 기치와 행동은 정적과 단념뿐이던 남자의 삶을 뒤흔든다. 인류의 종말을 예감한 이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출간 당시 오에 겐자부로가 "이번 작품이 지금까지 나의 총결산"라고 한 소설을 초판 표지 그대로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