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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시대가 드디어 왔다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 같은 2020년, 과학 소설계 안에서 근면하게 작품을 생산하며 ''연결'과 '확장'의 핵심적인 역할'(정세랑)을 담당한 배명훈의 첫 소설집 <타워>가 개정 복간되어 11년 만에 다시 독자를 찾았다.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가 연상되는 지상 최대 타워형 도시국가 빈스토크. 674층, 인구 50만 명. 대부분의 이동을 유료 엘리베이터로 하는 공간. 바벨탑을 닮았지만 바벨탑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하는 도시민들이 살고 있는 국가. 뇌물로 줄 법한 비싼 술이 오가는 관계도를 그리면 권력장 분석을 할 수 있는데, 그 권력장의 한가운데에는 어쩐지 '개' (타워 개념어 사전 기준 '개'는 일부 개체는 빈스토크 내 권력 핵심부에 서식하며 '국민'이라고 짖기도 하여 언어 구사 가능성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고 정의되어 있다.)가 존재하는 도시. (<동원 박사 세 사람>) 'SF' 답게 이 소설은 한번 설정한 세계관, 용어를 바탕으로 이야기에 살을 붙여 한 도시의 형상을 건설해나간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어떤 면을 아주 낯선 도시를 통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묘사해 우리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2000년대 초반의 갈등과 혼란을 배경으로 탄생한 2009년 작 <타워>를 2020년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라는 소설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조금의 자비도 찾기 어려운 도시 시스템에도 엘리베이터 옆에 우편함을 놓고 가면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편지 문건을 알아서 배달해주는 '파란 우편함' 시스템이 있다. 자신의 실수로 우편물 전달을 놓쳐 조은수와 김민소 사이의 편지가 전해지지 않아 두 사람이 어긋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병수는 온 힘을 다해 민소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위성 사진의 픽셀을 확인해 위험에 처한 민소를 구하려는 '익명의', '숫자로' 된 사람들. 위험을 무릅쓰고 어려움에 처한 도시로 가 다른 시민을 도우려 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할 2020년 다시 이 이야기를 읽는다. "빈스토크는 개인을 신뢰하니까요."라는 문장의 힘, 무용하고 바보같다는 걸 알면서도 (타워 용어사전에서 '바보'는 현대 도시인들 사이에 합의된 최소한의 사악함을 습득하지 못하여 타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간의 도리를 행함으로써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다.) 기꺼이 해내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이 싸워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 실존 인물, SF 작가인 배명훈의 이야기를 다룬 첫 에세이 <SF 작가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4054370 )도 함께 출간되어 기꺼이 배명훈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히치하이커에게 두 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