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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세번째 소설집. <딸에 대하여>에서 레즈비언인 딸이 엄마와 합가를 결심한 것은 애인과 함께 살 집이 없어서였다. <불과 나의 자서전>에서 '남일동' 재개발을 겪은 이들은 신분상승을 경험한다. 기준금리 동결 소식과 김포의 서울권 편입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부동산의 시대다. 우리가 머물렀고 머무를 집에 고인 여덟 편의 이야기가 소설집에 실렸다.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목화맨션>, <미애>, 김유정문학상 후보작 <축복을 비는 마음> 등이 제 집을 찾았다.
선우의 아파트 내 독서모임은 세련된 장벽을 세워 '끝까지 좋은 사람인 척 구는' 방식으로 <미애>를 배제한다. <목화맨션>의 소유주와 세입자로 관계를 맺은 만옥과 순미가 8년을 나눈 감정은 순미를 내보내기 위해 계약서를 살펴볼 때 흐려진다. 문제는 각자가 누구도 이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을(98쪽)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도달한 곳이 겨우 이 자리라는 것이다. 선우가 가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들의 열망"(16쪽)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미애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다. <목화맨션>의 소유주 만옥은 순미의 사정을 살펴 계약금을 올리지 않았고, 재개발 사업을 기다리며 놓친 많은 기회를 벌충하기 위해 하나뿐인 재산인 목화맨션을 팔아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불성실한 적도 악독했던 적도 없는 우리가 안간힘을 써서 도착한 곳이 겨우 이 작은 방 하나인데 무얼 더 해야 좋은, 멋진, 넓은 삶을 살 수 있나. 김혜진의 소설은 이 당혹스러움을 직시하는 데에서 삶에 스며든다.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291쪽)는 작가의 말과 함께 내가 살았던 그 집들의 면면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지렁이가 함께 살던 집, 개미가 물고 가던 집, 볕이 들지 않던 집. 나의 일부가 된 누추함과 환함을 비추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럼에도 나타날 축복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