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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 범죄들은 알려질 만큼 알려졌음에도 들을 때마다 몸서리치게 잔혹하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범죄들 앞에서, 그들은 여전히 떳떳하다. 그들은 왜 반성하지 않는가. 왜 인간을 도륙하고도 정신적으로 평온한가.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이 질문을 잡고 군국주의 전범들을 연구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전쟁이 종료된 이후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운동을 하는 등 양심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들이 고백한 과거의 모습은 살육 기계나 다름없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을 향한 끔찍한 학살, 잔인한 고문. 그러나 그들은 마치 무언가에 씐 것처럼 의아하리만치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이들의 감정을 마비시키는 '무언가'를 저자는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는 일본 사회와 문화로 분석한다.
전범의 정신분석에서 시작한 책은 일본 사회의 정신분석으로까지 나아간다. 그가 담담한 어투로 통찰력 있게 분석하는 일본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의 일면과 매우 닮아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음, 시대에 대한 부인과 망각. 원인-과정-결과에 대한 분석을 떼어와 한국에 대입하니 위화감이 없다. 이 책은 전쟁과 전쟁 후 일본 사회에 대한 통렬한 분석이지만 오직 일본 사회만에 대한 분석은 아니다. 전쟁, 집단범죄, 범 사회적 공격성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