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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반체제 작가 반디의 소설집. 익명의 존재여야 할 그는 '반딧불이'를 뜻하는 필명으로 북한에서의 삶에 관한 소설을 써왔다. 탈북자, 브로커 등을 통해 원고가 남한으로 전해졌고, 이내 해외에 소개되었다. 솔제니친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특수한 상황이 세계의 주목을 이끌었고, <채식주의자>의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가 소개한 영국판으로 펜(PEN)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전적인 이야기의 구성이 시선을 끈다. 첫 수록작 <탈북기>에서부터 최서해의 <탈출기>를 언급하는데, 1900년대 초중반 소설을 읽는 듯한 낯섦이 그들과 우리의 다름을 실감케 한다. 들장 내다(끝장을 보다) 같은, 생경한 우리말 역시 한국어로 읽는 소설이 무엇인지를 상기하게 한다. 남편 몰래 피임약을 먹는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 여행증 없이는 이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노모의 임종을 지키려는 아들,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에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일상은 소설이 될 수 밖에 없게 부조리하고, 그곳의 평범한 이들이 겪는 하루하루를 적는 순간 조지 오웰이, 카프카가 상상했을 법한 기이한 세계가 서술된다. 암흑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묻는 선명한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