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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인용한 영화 대사 한 줄. "악이 승리하려면 선한 자들이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영화 '갱스터 스쿼드'). 이 말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해당된다. 우리가 악해질 때는 선한 자아가 적극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다.
이 책에서 권석천이 일관되게 주목하는 것은 애매한 순간들에 드러나는 일상의 권력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대단한 갑질의 순간에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보여주지 않을 때 새어 나오는 짜증에서 이미 예의는 없다. 조직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후배에게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며 시작하는 힐난에서 벌써 예의는 증발됐다. 두 사람 중 한 명만 지을 수 있는 표정과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둘 사이엔 이미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잊고 적극적으로 약자의 편에서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악이 된다.
일상의 관성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도덕률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편의에 맞춰 만든 것이고, 우리의 뇌는 스스로를 악인보단 영웅으로 여기는 데에 익숙하다. 기존의 도덕률을 해체하여 무엇이 진짜 선인지 알아내기 위해선 정신 바짝 차리고 사유해야 한다. 권석천의 글이 빛나는 이유는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멀리 있는 거악을 겨냥하기보다 오늘 나의 나태한 악행을 먼저 살핀다. 그 반성엔 숨을 곳이 없기에 변명도 없다. 글의 곳곳에 배어 있는 그의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이, 읽는 이의 "과연 나는 어떤가"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 모두가 "별수 없다"는 깨달음을 연쇄적으로 얻을 때 세상은 조금 더 선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