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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고통을 모른다.” 고통을 겪는 이들이 종종 내뱉는 말이다.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는 있으나, 아무리 가까운 곳에 서 있다 해도 그 고통을 알 수는 없다. 이 고통을 알 수 있게 하는, 결국 그곳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리하여 고통을 나누며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는 방법은 없을까.
엄기호는 고통을 말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라는 자리가 아니라, 고통을 겪는 이들이 ‘고통의 자리’에서 나와 ‘고통을 말하는 자리’에 서는 일, 그리하여 고통의 곁에 선 이들이 고통을 통한 직접적인 연대의 불가능에서 허우적대다 자리를 잃지 않고, 서로의 곁을 지키며 고통과 동행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고통은 동행을 모르기에 끝끝내 동행을 파괴한다.” 결국 고통의 곁은 무너져 ‘고통을 말하는 자리’는 가능하지 않고, ‘고통의 자리’만 남아 어떠한 가능성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능할까. "고통과 동행하는 그들에게 동행하는 것" 아닐까. "그들이 대면하고 있는 고통의 자리에 아직 새로운 것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곁이 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