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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 중 다수는 앞서 발간된 단편집 <체체파리의 비법>을 읽었을 것이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유명 중단편들이 다수 포진한 그 책은 작가의 정수를 담은 것처럼 보였다. 어둡고 냉소적인 설정과 건조하고 단호한 문장, (이제 와서는 어떻게 동시대의 독자들이 이 작가가 여자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여성성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이 -남성 위주의- 사회가 어떻게 여성성을 압박하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메타포들.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충분히 다양해 보였다. 그래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두 번째 단편집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그 이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기존에 선사한 장점들을 꾸준히 재확인하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됐다. 보통 다들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앞선 단편집의 성과를 더욱 확장한다. 더욱 다양한 소재들이 준비돼 있다. 표제작은 우주 변방을 모험하기를 즐기는 용감한 소녀의 이야기이고, '별의 눈물'은 기대하지 못했던 고전적인 우주 전쟁물이다. 제목부터 로저 젤라즈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은 실제로 젤라즈니가 몸담았던 뉴웨이브 SF의 성취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앞선 단편집의 성과를 거의 유지한 채로, 이 책은 더 멀리 나아간다. 더욱 다양한 세계 속에서 여성의 위치가 재조절되고 재조명된다. 특히 이번 단편집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새로운 세계의 불가해함 앞에서 좀처럼 좌절하지 않는데, 이는 그녀들이 살아온 '이해 가능한' 세계가 이미 조용한 투쟁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첫 단편의 주인공부터가 이를 증명한다).
올해는 힘든 한해였지만 좋은 것들도 꽤 많았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그 좋은 것들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것이다. 특별히 SF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