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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피아노 건반은 성인 여자 피아니스트의 87%에게 불리하다. 평균적인 남자 손 크기에 적절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사고를 당했을 때 여자가 중상을 입는 비율은 남자보다 47% 높고, 사망 확률은 17% 높다. 자동차 설계의 역사에서 여자의 신체가 고려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사무실에서 많은 여자 직원들은 담요를 덮고 있을까? 적정 실내 표준 온도가 남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여자보다 남자의 신진대사량이 높기 때문에 남자가 적당하다고 느끼는 온도를 여자들은 춥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불편한 일들이(신체적 접촉과 폭행을 제외하더라도) 생긴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기분 탓이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위 세 경우가 우연이거나 특별한 경우라고 반박하고 싶어지는 이에게도 우선 이 책을 정독하길 권한다. 고용과 승진, 각종 제품 설계, 의학, 정치, 노동, 도시 계획 등(그러니까 사실상 모든 것)에서 여자의 존재가 얼마나 총체적으로 배제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왜 배제되는 것일까? 여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라는 악마의 속삭임 때문일까? 그렇진 않다. 다만 오래전부터 인간은 곧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인간=남성인 세상에서 여성의 신체, 경험, 존재는 지워지거나 무시당해왔다. 책에선 이를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 부르며, 이로 인해 여성이 죽거나 다치고, 불편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무급 노동을 하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례들을 알려준다. 1300개가 넘는 출처는 이 책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연구결과와 수치들을, 반박할 여지없이 뒷받침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가 아닌 '이야기'라 하지만, 남자를 위해, 남자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에서 여자의 경험을 이야기만 한다고 들릴 리 없다. 이 책은 실증적인 연구 결과들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에 더해 각 소주제별 결론에서는 자주, 여자를 배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따져보아도 큰 손실이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단지 '여자에게도 남자와 동등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명제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씁쓸해지지만 경제의 문제를 따져서라도 어떻게든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보자는 저자의 혈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