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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 복숭아꽃 피면 호박씨 심고, 꿩이 새끼 칠 때 콩 심고, 뻐꾸기 울기 전에 깨씨 뿌리고, 깨꽃 떨어질 때 버섯 따며 사계절 자연 속에서 일과 함께 사는 사람. 아흔일곱 살 이옥남 할머니는 남편 없이 홀로 지내다 보니 적적해서, 또 글씨 좀 나아질까 싶어 도라지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꼬박 30년 동안 글을 썼고, 그렇게 써온 일기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에는 할머니가 만난 자연과 일, 삶에 관한 진솔한 기록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뽑으면서도 죄를 짓는 것 같다 하고, 빨간 강낭콩은 빨개서 이쁘고 그냥 강낭콩은 깨끗해서 이쁘다 하고, 자식들한테 용돈을 받으면 고마우면서도 마음 아프다 한다. 작은 생명도 귀하게 여기고, 자식과 손주에게는 넘치도록 사랑을 쏟으며, 이웃에게는 정성으로 대하는 이옥남 할머니.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가 보여 정겨우면서도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할머니의 맑고 다정한 글을 대하며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