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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재. 나는 강사 일을 하며 비정기적으로 번역을 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연예기획사에서 제법 경력이 쌓인 채 일하고 있고, 본인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얻기 위해 스크랩을 즐겨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어머니와 나를 떠났다. 홀로 나를 키운 어머니는 현재의 내 삶이 아주 큰 행운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입에 늘 붙어있던 말. 너의 삶. 너의 행복. 너의 안전. 내가 알고 있던 내 삶이 틀어진 건 어머니가 담낭암을 앓던 즈음부터였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는 될수록 많은 얘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복기하고 싶어했다. "나는 한동안 어머니가 내게 남긴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손발이 묶인 채로 바닷속에 던져진 사람처럼 말이다." (13쪽) 그렇게 어머니가 던진 말은 나를 그 '작은 동네'로 이끈다. 어머니의 유별난 보호를 받던 열 살인 내가 살고 있는.
"문득 그동안 나를 구성한다고 믿고 있던 요소들이 재정비되는 느낌"(34쪽)이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어머니가 내게 말한 '작은 동네'는 화재로 잃은 가족을 기억하려 개를 한 마리씩 기르는 슬프고 기이한 마을이다. (손보미의 문장처럼 말하자면 '어머니는 내게 진실을 말하였는가?') "이 동네에서 불이 나서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봐. 그걸 아무도 바꿀 순 없어. 얘. 네가 고칠 수 있는 일 같은 건 없어. 일어난 일은 그대로 일어난 대로 둬야 해." (133쪽) 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재조립되는 순간. "우리 모두 다 함께 고통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들을 계속 살게 하는 거라고." (52쪽) 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굳은 표정이 떠오르는 순간. 어떤 유년은 조금도 달콤하거나 명랑하지 않게, 비밀을 품은 입술을 꾹 다무는 법을 배우며 지나가버리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손보미의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기척으로 말하는 작가인 손보미는 이 유년기의 '분위기'를 체험하게 한다. "결정적인 대목을 말하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덕에 더욱 강렬"(권희철)한 이야기 쌓기가 빛을 발한다. "네가 고칠 수 있는 일 같은 건 없어."라고 말했던 어머니가 평생을 두고 고치려 했던 '그것'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후반부의 밀도가 특히 인상적이다. 결말을 알고도 비로소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지는, 손보미 두번째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