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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동수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기사라고 해도 무방할 건조한 언어로, 아버지 마동수의 전(傳)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출생한 1910년부터 그의 두 아들이 살아간 1980년대까지, 현대사의 바람은 아버지와 아들들을 자꾸 집에서 몰아낸다. 그렇게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를 떠나고 되돌아 온다. 모멸과 비애를 견디며 하루를 가차없이 살아내지만, 끝내 돌아올 수밖에 없다.
김훈 장편소설. 작가 본인의 아버지의(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는 1910년 태어나 1973년 사망했다.), 혹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이야기를 김훈다운 문장으로 그린다. 전쟁을 앞둔 장군의 고독을 묘사할 때처럼 (<칼의 노래>), 신앙을 포기하지 못해 도달한 유배지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이의 고통을 말할 때처럼 (<흑산>) 묘사는 지독하고, 가차없는 고통조차 숨김이 없다. 죽음을 마주한 시점, 아버지 마동수는 독립운동 혐의로 남산경찰서에서 매를 맞고 나온 형과 함께 마주한 어린 시절의 국밥집을 떠올린다. "그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고 이미 깨달은 그 어린 날을. 달아날 수 없는 삶을 끝내 살아야 했던 아버지와 아들들, 그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다시 김훈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