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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만든 무수한 순간들의 기록"
    사진 속 사랑스런 아기가 해변에서 웃고 있는 아이로, 단체 사진 속 안경 쓴 소녀로, 거실에서 아들과 나란히 앉은 어머니로 변모한다. 소녀에게 '미래'란 '빛이 가득한 무한한 공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미래'는 일과 결혼, 출산이라는 '연장해야 할 경험들의 합'으로 변한다. '장보기, 세탁물 확인,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 같은 코앞에 닥친 미래를 위한 끝도 없는 준비' 속에서, 그녀는 더이상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 걸었던 이국의 거리와 좋아했던 그림과 책을 떠올리고는 이제 욕망의 대상이 미래가 아닌 '과거'가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다시 삶과 모험을 되찾기 위해 도달한 고독 속에서, 그녀는 '손에 쥐어야 할 다수의 물건들'과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에 의해 자신을 잃지 않도록, 그녀를 형성해 온 수많은 장면들을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최초의 생존 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으로 소설 속 사진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름은 '아니'이지만, 소설의 시점은 '그녀'와 '우리', '사람들'을 오간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작가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그렇게 '그녀'가 겪은 사건들에 그 시절 신문 헤드라인, 광고와 브랜드, 영화와 소설 등이 촘촘히 엮여 '사람들'의 기억이 담긴 회고록이 탄생했다. 덤덤히 전해져오는 작가의 가장 내밀한 추억과 다른 시절의 생생한 공기 속에서 '나'를 만든 무수한 순간들은 무엇이었던가,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보게 된다.
    - 소설 MD 권벼리 (2019.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