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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서 맹인은 남자에게 대성당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해달라고 한다. 남자는 TV에 나오는 대성당을 뚫어지게 보지만 설명할 길이 없다. 아주 높다, 아주 크다 같은 뻔한 말만 맴돌 뿐.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시각적인 요소들을 설명하기는 망망한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드라마, 영화, 예능에서 '보이는 것'을 글로 옮겨내는 사람들. 나희도와 백이진이 주고받는 눈빛과 몸의 기울기를, 염미정과 구씨가 흐릿하게 짓는 미소를, 유재석과 전소민이 농담을 주고 받는 동안 자막이 알려주는 추가 정보를 가장 섬세하게 보고 세밀하게 표현해 내는 화면해설작가들이다. 화면을 '듣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이들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모으고 내내 단어들을 메모한다. 대사와 대사 사이 짧은 시간, 화면을 채우는 시각 요소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 공부하고 고민한다.
10여 년 간 이 일을 해온 다섯 명의 작가가 함께 일에 대한 글을 썼다. 그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일인 만큼 낯설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이다. 작가들의 업에 대한 진중한 자세와 화면해설 방송을 듣는 시각장애인들의 진심 담긴 후기가 합쳐져, 책은 왠지 로맨틱한 감동을 남긴다. 방송인 이동우는 책을 읽으며 "내내 사랑에 관하여 생각했"다고 하니, 책에 감도는 따뜻한 온도가 역시 주관적 감상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