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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를 꼭 읽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그의 대표작들이 담긴 책들과 엄청난 두께의 레이먼드 카버 평전까지 이미 출간된 상태다. 이미 출간된 책들만으로도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초상을 그려내는 데는 충분하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그 초상을 그린 후에 남은 것들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에세이나 서평들은 인상적인 문구들을 포함하고 있고 카버의 삶을 어느정도 엿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여러 종류의 글(단편소설, 장편소설의 조각 등)을 모아 놓은 책의 구성 상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기는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여기 남은 글들은 세공된 보석이라기보다는 원석들의 컬렉션에 가깝다.
최고 수준의 컬렉션이 아니라 그가 그 수준에 다다르기까지 노력하는 과정에서 남긴 흔적들, 끝내 이루지 못한 (장편소설을 향한) 꿈, 소설가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남긴 이야기들, 독자의 입장에서 다른 책들을 읽고 쓴 글들은 모두 최고의 소설가라는 이미지를 둘러싼 삶의 조각들이다. 보다 작고 평범하며 잔잔히 빛나는, 더욱 '카버적인' 잡동사니들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창고에 고이 모셔진 깡통 상자 안에 누군가가 쓴 습작들과 작은 사진첩과 잡동사니가 들어가 있다면, 그 상자를 열어 기쁨과 웃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상자의 주인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정말로 카버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