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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국가 일본에도 "'일본'이라는 질곡 아래 발버둥 치면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며 싸워 나간 이단자들, 일본 미술계의 '선한 계보'"(5쪽)에 속하는 이들이 있었다. 서양미술 - 서양음악 - 조선미술을 거치며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눈으로 본 세계를 기록해온 서경식 선생이 드디어 일본 근대미술을 소개한다.
한국의 근대미술사에 아로새겨진 이쾌대라는 이름이 있다. 서경식의 전작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자세히 소개되기도 한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그림이다. 1934년 동경의 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이쾌대는 이중섭, 김학준 등과 어울려 동경에서 조선적인 서양미술을 꿈꿨고, 조각가 권진규는 그의 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웠다.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걸 바쳤지만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던 그들의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이단자들의 외로움이 서경식과 공명한다. 죽음을 들고도(해골을 든 남자의 자화상은 서양화의 '바니타스(허무)'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평온한 나카무라 쓰네의 얼굴을 보며 그는 "불행의 불행을 거듭한 끝에 죽어 갔으면서도 어째서 이 남자는 미칠 듯 노여워하지도, 울부짖지도 않고 이렇게 달관한 듯 고요한 표정일 수 있는가?"(19쪽) 하고 묻는다. 벨 에포크의 파리가 아닌, 으스스하고 쓸쓸한 파리를 스케치한 사에키 유조의 순수한 열정을 두고 그는 "순수한 영혼에게 겨우 숨통이 트였던 때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끼어 지극히 짧았던, 허구의 평화가 잔존했던 시기에 지나지 않았다."(72쪽)고 애석해한다. 마냥 감탄하지도, 마냥 비판하지도 않는 자리에 서서 서경식은 자신이 놓인 그 '사이'를 바라본다. 2권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