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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게임이 있다. 앞뒤로 색이 다른 원판을 바닥에 깔아놓고, 플레이어 두 명이 대결하여 모든 원판을 자신의 색으로 먼저 뒤집으면 이기는 경기다. 룰은 간단한데 승부는 좀체 나지 않았다. 한 명이 아무리 뒤집어도 다른 한 명이 다시 원상태로 뒤집기에 결국은 원점인 상태. 무언가 답답하고 지리멸렬한 게임이었다.
현 세계와 페미니즘이 이 원판 뒤집기를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존의 색을 뒤집어 다른 색의 세계로 바꾸어 놓는 것이 페미니즘의 언어니까. 손희정은 그 언어를 이끌어가는 이들 중 하나다. 주요 플레이어로서 손희정은 이 세계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시' 써왔다. 지배자의 언어로 된 세계를 '다시', 어느새 원점으로 돌아간 세계에서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대고 '다시', 이 책은 그 '다시'들을 모은 기록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다시' 쓴 말들에 기대어 수많은 이들이 버틴다. 끈질기게 반복하며 늘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조금씩 나아간다. 서문에 그가 썼듯 진부한 이야기는 잘 팔린다. 돈이 된다. 그러나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는 구원이 된다. 그가 쓴 글이 뒤집어 만드는 세계는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 색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