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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길래, 내가 드디어 과학에 눈을 뜬 것인가 감격할 뻔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책 읽는 과정이 아무리 작가와 독자의 줄탁동시라지만 줄과 탁 중에 더 힘센 쪽은 분명 있다. 이 책은 저자의 '탁'이 압도적이다. 물질의 물리학이라는 낯선 개념을 이렇게까지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내 잠재력은 아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물질의 물리학에 대해 설명한다. 응집물질물리학은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큰 분야인데, 세상을 이루는 물질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를 하는 학문이다. 놀랍게도 국내 교양 물리학 서적 중엔 이 분야를 다루는 책이 아직까지 없었다. 이 책이 첫 단추다. 시작이 좋다.
물질이라는 것이, 책에도 나오듯 똑떨어지게 설명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때문에 전문가와 배경지식 없는 이가 대화하기엔 서로 난감해질 요소가 많은데, 저자는 이 난관을 매력적인 스토리텔링과 재미있는 비유로 돌파해버린다. 저자 본인과 멋진 물리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물질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호텔 투숙객이나 주방의 연구 같은 비유로 전자와 가설을 설명하는 식이다. 과학서인데 곳곳에서 인문서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이것은 뭐랄까, 아름다운 반칙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앞으로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 책을 내밀며 "이게 제 인생이었습니다."라고 말하겠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 이렇게 단단한 교양서로 인생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