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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캐롤
2016년 소설/시/희곡 분야 7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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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천로역정"
    1950년대의 미국. 딸의 장난감을 사러 백화점에 간 캐롤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 테레즈와 마주한다. 그제껏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우연히 마주치자마자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다. 운명적인 만남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다. 테레즈는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이 없고, 반복되는 백화점 판매원의 일상에 점점 지쳐가던 중이었다. 캐롤 역시 아무런 기쁨도 찾을 수 없는 결혼 생활에 파묻혀가고 있었다. 이 강렬한 만남은 그 갑작스러움 때문에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일탈이 아닐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일탈들은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이 홀로 빚어낸 그림자 놀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이렇지는 않다. 새로 사랑하기 시작하는 이들이 전범으로 삼고 싶어하는 올곧은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 언제나 어딘가에는 그런 사랑이 있었고 앞으로도 영영 그럴 것이다. 누군가가 그럴 수 있다면 그게 우리일 수도 있다.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 보자. 이것은 일탈이 아닐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사랑'이라고 답한다면, 캐롤은 1950년대의 미국에서 레즈비언임을 고백하고 주류 사회의 바깥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인생을 걸어야 한다. 이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파묻혀가는 인생이 그려낸 환상 속의 놀이일까. 캐롤과 테레즈는 사랑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함께 떠났으며, 떠난 자신들을 쫓아와 딸과 애인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협박하는 사설탐정 앞에서 남은 인생의 거대한 분기점이 될 선택을 내릴 것이다. 이 즈음의 어느 순간에 질문과 의심은 잦아들고 어떤 평화와도 같은 상태가 찾아온다. 고통이 사라진 평화가 아니라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평화. 마치 수도원 속에서 믿음을 구하는 이들과 같은 평화다. 자신의 선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고난을 어깨에 짊어진 이들은 의심하지 않음으로써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의심하지 않는다. 비록 더 큰 고통과 피할 수 없는 슬픔이 다가온다고 할 지라도, 그 미래조차 이미 평화로운 그들의 어깨 위에 있다.
    - 소설 MD 최원호 (201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