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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겨울까지 반 년 동안 나는 지하 계단 아래 반달 모양의 무대 뒤에 있었다." 김소희 작가의 자전적 성장 만화. 30년 전으로 돌아가 1987년 가을의 '나'를 복원시킨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 소위 집안이 망하는 바람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지하 술집 좁은 창고 방이 은신처가 되었다. 지하와 지상을 오가며 두 계절을 보낸다.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고 인기 많은 오락 부장이지만, 감추고 싶은 집안 환경과 아버지의 부재라는 결핍을 안고서.
소녀는 끊임없이 연출한다.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거나 트집 잡힐 일 없는 나, 남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나를. 궁지에 몰린 친구를 외면했던 미안함, 한고비 한고비 넘기는 동안 마음을 기댈 수 있었던 사람들. 지독하게 외롭고 가난했지만 여전히 그리운 시절을 담담하게 회상하는 이야기다. 유리 파편처럼 박혀 있던 내 서러움마저 조금쯤 해소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고마운 이름들이 떠올랐다. 그들을 기억하면서,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길 희망할 수 있으니 오늘은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