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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시인 존 셰이드가 미완의 시 '창백한 불꽃'을 남긴 채 사망한다. 그와 막역한 사이였던 동료 교수 킨보트는 색인카드 80장에 흩어진 유고를 취합해 주석을 달아 출판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집'이 아닌 '소설'이다. 킨보트의 머리말로 시작해, 셰이드의 시 전문, 킨보트의 주석과 색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 독자는 주석을 시보다 먼저 읽기를 권유하는 킨보트의 제안을 따를지, 보통의 소설처럼 순서대로 읽을지, 시와 주석을 번갈아 보며 나보코프가 설계한 미로에 기꺼이 빠질지 선택해야만 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대표작이자 그의 문학 세계의 정수로 꼽히는 <창백한 불꽃>이 40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복간되었다. 10년간 <예브게니 오네긴>을 번역하고 주석을 붙였던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있으며, 특유의 치밀한 언어 유희, 방대한 레퍼런스에 더해 실험적인 형식이 두드러진다. 난해한 미완성 시의 이해를 위해 의심스러운 주석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독서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