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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이계궁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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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크혼 데크리 아얀 도미느아크.”
    “뭐, 뭐야. 여기 어디야.”
    개똥은 낯선 언어를 접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복색도 낯설었다. 조선인처럼 생겼지만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혹시 바다 건너에 있다던 왜국에 온 것일까? 그렇다면 인신매매라도 당했다는 말인가?
    “빌어먹을 산적 놈들! 이 쳐 죽일 놈들! 감히 궁녀를 팔아먹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먼!”
    개똥이 이를 박박 갈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누구든지 간에 자신을 사들인 사람이 분명했으니 적대감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개똥은 목청을 높여 그들에게 소리쳤다.
    “난 조선의 궁녀다! 왕을 모시는 사람이란 말이야! 당장 나를 조선에 데려다 놔. 조선!”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던 남자 중 한 명이 반복되는 단어를 확인한 듯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초선?”
    “조선! 조선 말이야, 조선! 조선 몰라? 도대체 여기 어디야!”
    그들도 개똥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답답했는지 자기들끼리 무어라 숙덕이며 머리를 감싸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어딘가로 향했다. 잠시 후 막사로 돌아온 남자는 개똥에게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나 주는 거야?”
    개똥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였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남자들을 바라보던 개똥을 보다 못한 젊은 남자가 개똥의 손에서 목걸이를 빼앗듯이 가져가더니 그녀가 손을 쓰기도 전에 목에 걸어 주었다.
    “뭐, 뭐 하는 짓이야!”
    혹시 왜에서 쓰는 노예 인장이라도 될까 봐 겁을 낸 개똥이 발작하듯 소리 지르며 목걸이를 빼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개똥은 저도 모르게 남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
    “어? 당신, 조선말 할 줄 알아?”
    “조선. 그게 당신이 살던 세계의 이름입니까?”
    “세계?”
    개똥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고, 여긴 도대체 어디야. 아니, 당신들 도대체 누구야. 왜 날 데려온 거지? 산적들에게 얼마를 주고 날 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선의…….”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이곳은 당신이 살던 세계가 아닙니다.”
    “……뭐?”
    자신의 말을 자른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 개똥은 황당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설명했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당신을 불러들인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절실하게 당신이 필요합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세 남자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그들의 부복에 개똥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들 중 가장 젊은 남자가 다시금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술사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신다면 우리 세계의 인간들은 멸망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술사? 누구? 나?”
    주변을 돌아보던 개똥은 황당하다는 듯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남자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오랜 시간 계속됐다. 처음엔 그저 황당하기만 하던 개똥도 그의 설명에 점차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서휘. 괜찮아요?”
    피곤한 기색의 그를 보며 단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팔을 조심스레 잡아 왔다. 그러자 서휘가 미소 지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래, 지금은 이렇게 축 처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단영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는 조금 더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너만 괜찮으면, 난 아무래도 괜찮아.”
    “많이 지쳐 보여서 걱정스러워요.”
    자신의 팔을 여전히 붙잡고 있는 단영을 끌어당긴 서휘가 단영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녀의 머리에 턱을 괴고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단영이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확인하려 했지만 서휘가 턱에 힘을 주며 버티는 바람에 머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윽.”
    “그런 건 봐도 못 본 척해 줘야 하는 게 아니더냐.”
    “네?”
    “어느 사내가 제 여인에게 힘든 기색을 보이고 싶어 할까.”
    “서휘. 내게 그럴 필요…….”
    “그래, 어쩌면 가끔은 이렇게 너에게 기대어 잠시 마음을 다독일 수도 있겠지.”
    단영의 허리에 두른 손이 나른하게 올라와 작고 동그란 어깨를 쓸었다. 한숨 같은 서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곁에 있으면 한평생 고민 없이 그저 네 옆에 존재하고만 싶어지니까.”
    서휘가 고개를 들자 자유로워진 단영도 그와 눈을 마주쳤다. 빙긋 웃어 보이는 서휘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난 널 지켜야만 해. 내가 유일한 안식처가 바로 여기 있으니.”
    “언제든 내게 와서 쉬어요.”
    따뜻한 그녀의 목소리에 서휘가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따뜻한 여운을 오래 즐길 수는 없었다. 일각이라도 빨리 중현을 따라잡아야 했고 그리하여 그 배후에 있는 이를 확인해야만 했다. 정말 그의 생각처럼 중현의 배후에 요신이 있다면 수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요신을 봉인하여 멸(滅)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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