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1974년, 프랑스의 작가이자 급진적 페미니스트 프랑수아즈 도본은 여성의 몸을 지배하는 권력과 지구를 고갈시키는 착취가 하나의 체제에서 비롯된다고 선언한다. 여성해방과 생태 혁명을 결합한 이 사유에 그가 붙인 이름이 바로 ‘에코-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아니면 죽음』은 이 말을 처음 제시하고 그 정치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전개한 역사적 저작이다.
도본은 여성해방운동의 역사와 당대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가로지르며 여성혐오, 노동, 성적 억압, 임신 중단, 인구 증가, 자원 고갈의 문제를 하나의 구조 안에서 읽어낸다. 여성은 인류의 절반이면서도 자신의 몸과 노동, 재생산과 삶의 조건을 결정하는 자리에서는 주변으로 밀려난다. 도본은 여성을 “소수로 취급받는 유일한 인간 다수”라 부르며, 바로 그 자리에서 세계를 전환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가 요구한 것은 남성의 권력을 여성이 넘겨받는 일이 아니다. “여성에 의한 권력 그 자체의 파괴”, 곧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생명을 소유하며 자연을 무한한 자원으로 다루는 질서의 종식이다. 도본에게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더 많은 몫을 배분하는 정치에 머물지 않는다. 모든 인간과 생명이 살아갈 조건을 다시 조직하는 혁명이다.
반세기 전 미래를 향해 던져진 이 책의 경고는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오늘 더욱 구체적으로 읽힌다. 세계가 마침내 도본의 급진적인 제목을 따라잡았다. 『페미니즘 아니면 죽음』은 에코페미니즘의 기원을 보여주는 고전인 동시에 지금 어떤 삶과 세계를 선택할 것인지 다시 묻는 현재의 책이다.



“나뭇잎은 내 종이 위에 짙은 얼룩을 만들고
그 가벼운 그림자가 내게 영감을 줍니다”
프랑수아즈 도본이 일곱 살에 쓴 시의 구절입니다. 다섯 살 무렵부터 종잇조각만 보이면 글씨로 까맣게 채웠던 아이는 평생 글쓰기를 사유의 형식이자 행동의 방식으로 삼았습니다. 책상과 거리는 그에게 서로 다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도본의 문장은 선언처럼 돌진하다가 어느 순간 개인적인 기억 속으로 급히 방향을 틀고, 지독한 비꼼 뒤에 방대한 인용과 논증을 쌓아 올립니다. 통계와 역사, 신화와 정신분석, 혁명운동의 기록과 거리의 낙서가 한 문장 안에서 맞부딪치기도 합니다. 여러 겹의 의미가 압축된 문장 앞에서는 한참 멈추어 섰고, 몇 쪽을 지나온 뒤에야 앞선 문장의 뜻을 새롭게 이해해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여러 차례 읽은 것은 교정 작업을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되돌아 읽을 때마다 끝내 풀리지 않는 두 이름이 있었습니다. 미셸과 리나입니다. 미셸은 집 없이 프랑스 전역을 떠돌며 레지스탕스의 보급물자를 나른 사람으로, 또 “전쟁 영웅”으로 불립니다. 리나는 한때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무소용하고 끝나지 않는 ‘비잔티움식’ 논쟁”에 이성을 빼앗긴 동지로 등장합니다. 미셸도 결국 자기 파괴로 내몰렸다고 합니다. 두 사람에 관한 설명은 더 이어지지 않습니다. 도본은 그들의 성씨도, 그들과 나눈 시간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 사이로 파시즘과 전쟁, 혁명의 열망과 좌절을 함께 통과한 사람들의 삶이 언뜻 모습을 드러냅니다. 각주를 달 수 없는 미셸과 리나를 지날 때마다 도본이 목도한 혁명이 누구를 해방하고 누구를 다시 주변으로 밀어냈는지, 권력을 획득하는 것과 권력 자체를 파괴하는 일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격렬하지만 근엄함에 갇히지 않습니다. 도본은 권위가 두른 장엄함을 비꼬고, 수치와 모욕의 언어를 웃음과 노래로 되돌립니다. 1971년 혁명적동성애행동전선(FHAR)을 위해 만든 〈FHAR의 노래〉에서 그는 조르주 브라상의 〈나쁜 평판〉의 곡조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사랑과 욕망을 재단하는 세상의 시선을 유쾌하게 뒤집습니다. 사회가 비정상과 수치로 낙인찍은 존재들은 노래 속에서 그 언어를 빼앗아 웃음으로 되돌려줍니다. 도본이 직접 부른 이 노래는 지금도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revolutionpermanente.fr/Le-chant-du-FHAR?utm_source=chatgpt.com)
혁명은 희생과 엄숙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서로를 발견하고, 빼앗긴 기쁨과 상상력을 되찾는 일 역시 혁명의 일부입니다. 도본에게 유머는 권위를 무너뜨리는 정치적 언어였고, 축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미리 살아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책을 거듭 읽으며 분명해진 것은 도본이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여성에게 황폐해진 지구를 돌보는 ‘젖줄’이 되라는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본성이 아니라 여성의 몸과 자연을 함께 소유하고 전용해온 권력을 문제 삼습니다. 여성의 출산 능력을 통제하는 사회와 생산과 축적을 위해 자연 자원을 고갈시키는 사회가 하나의 질서 안에서 작동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의 몸에 관한 정치와 지구의 생태는 처음부터 분리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요구한 것 또한 기존의 남성 권력을 여성에게 그대로 넘기는 일이 아닙니다. 도본이 말하는 변이는 모계사회도, 단순한 “여성에게 권력을”도 아닌 여성에 의한 권력 그 자체의 파괴입니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는 이를 “여성성의 사회”, 곧 “여성 권력의 사회가 아니라 비-권력의 사회”라고 부릅니다. 여성해방과 생태 혁명이 만나는 곳은 권력의 주인이 바뀐 세계가 아니라 지배하는 권력 자체가 사라진 세계입니다.
페미니즘 아니면 죽음.
‘아니면’ 사이에는 두 세계가 놓여 있습니다. 생명을 자원으로 소비하는 세계와 생명을 삶의 조건으로 존중하는 세계. 이 제목은 과장이 아니라 반세기 동안 유예되어온 질문입니다. 도본은 “남성 중심 사회가 지속된다면, 인류에게 더 이상 내일은 없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선택할 여지는 없습니다.
여러 번 멈추고 되돌아 읽으면서도 끝내 그 거침없는 생명력에 붙들렸던 책을 이제 독자 여러분에게 건넵니다.
— 편집자 최민유
이 책은 경전이 아니라,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에코페미니즘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솟아난 보물과도 같은 질문들을 품은 텍스트다. 그 질문들은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다시 성찰하게 하는 날카로운 통찰로 이어진다.
이 책은 2015년 이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페미니즘 운동이 마주한 문제들을 성찰하게 한다. 왜 래디컬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비판을 넘어 자본주의 비판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왜 1960~1970년대의 사회주의 운동은 여성혐오를 넘어서지 못했는가? 자기계발과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틀을 문제 삼지 않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흐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한 이론적으로 흥미로운 논쟁점을 제공한다. 생태위기를 여성의 위기이자 인류의 위기로 읽으면서도 이를 새로운 “휴머니즘”의 영역에서 논의한 것은 시대적 한계인가, 페미니즘의 숙명인가?
이러한 질문과 논쟁 속에서 페미니즘의 지평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 이현재(서울시립대 인문학연구소 교수, 『여성혐오, 그 후』 지은이)
— 노고운(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 부교수, 『세계 끝의 버섯』·『비판적 에코페미니즘』(공역) 옮긴이)
— 쥘리 고레키(생태페미니즘 연구자·활동가)
— 『테라페미나』
— 『포어워드 리뷰스』
— 『에스프리』
추천 서문 — 미리암 바아푸・쥘리 고레키
I 페미니튀드냐, 급진적 주체성이냐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불행
다수인가 소수인가?
노동과 매춘
강간
II 혁명에서 변이로
쥐의 스트레스
낙태에 관하여
행성 페미니즘 선언을 위하여
행성 페미니즘 선언을 위하여(계속)
행성 페미니즘 선언을 위하여(마무리)
대장정을 위하여
III 에코-페미니즘의 시간
새로운 관점들
생태학과 페미니즘
참고 문헌
결국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련적으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체계로 인해 행성 전체와 인류 전체가 죽음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인류 전체를 해방하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이 세계를 남성에게 속한 오늘날의 체계로부터 구해내 내일의 인류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43~44쪽
—47~48쪽
—163쪽
—270쪽
—312~313쪽
—313~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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