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13세기에 칭기스 칸과 그의 후예들은 당대 알려진 거의 모든 세계를 손에 넣었다. 몽골의 기마 병사들은 질풍처럼 달려서 전 세계를 정복,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거대한 제국을 이룩했다. 세계제국의 출현은 현대의 우리뿐 아니라 당대인들에게도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대에 이미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몽골제국의 흥기와 팽창 과정을 각기 자기들의 언어와 문자로 기록했다(몽골, 중국, 이란, 러시아, 고려, 인도, 이집트, 유럽 여러 나라). 저 멀리 코카서스 산중의 아르메니아나 조지아의 주민들도 몽골의 공격을 받은 충격을 책으로 썼을 정도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1300년대 초, 칭기스 칸의 후예인 훌레구 울루스의 가잔 칸은 재상 라시드 앗 딘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것이 바로 ‘연대기의 집대성’이라는 제목이 달린 『집사』다. 라시드 앗 딘은 몽골제국 기마 군단의 발길이 닿았던 전 세계의 역사를 모두 모아 세계제국 몽골의 역사를 완성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민족의 역사를 망라하여 서술한 이런 규모의 저술은 그때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집사』를 ‘최초의 세계사’라고 부른다.
2023년 봄, 서울대학교 김호동 명예교수는 20년간 이어온 집사 번역 작업의 마침표를 찍었다. 라시드 앗 딘의 집사 시리즈를 전 5권으로 완성한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번역된 한국어판 『집사』는 1317년 바그다드에서 라시드 앗 딘 생전에 필사된 페르시아어 사본을 저본으로 삼고 그 밖의 여러 사본을 참조하며, 러시아 교감본, 러시아 번역본, 영어 번역본을 모두 교차 검토하여 번역하였다. 앞서 번역된 영어판과 러시아판의 오류를 바로 잡았음은 물론이고 가장 최신의 몽골제국사 연구 성과까지 반영한,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집사』 번역본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학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자료가 한국어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학계의 경사요, 한국 출판계의 자랑이다.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김호동 교수는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MONGOL EMPIRE(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의 대표 저자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합쳐 5권, 224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은 독자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이에 김호동 교수는 집사 전권의 완간과 동시에 새로운 버전의 『집사』 집필을 시작하였으니, 그 결과물이 바로 『몽골제국 연대기』다. “한 권으로 읽는 집사”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집사』의 압축 완성본이다. 김호동 교수는 칭기스 칸과 그의 후예들이 몽골 고원을 통일하고 계속 세력을 확장하여, 마침내 동쪽 끝 고려와 서쪽 끝 콘스탄티노플을 연결한 세계 제국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이 책에 소설처럼 펼쳐놓았다. 400여 쪽으로 줄어든 이야기에 지도와 계보도, 사진 등 풍성한 시각 자료를 더한 『몽골제국 연대기』는 몽골제국의 역사를 읽는 사람들의 손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단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라시드 앗 딘
세상 사람들의 스승이요 솔로몬왕의 대재상 아사프의 현신이자, 『축복받은 가잔의 역사(Tārīkh-i Mubarak-i Ghāzānī)』라 이름 지어진 이 책의 집필자는 주님의 복을 받으신 가잔 칸—알라께서 그의 증험을 입증해주시기를!—의 이름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또한 당대의 제왕이요 지상의 술탄들 가운데 술탄이며, 동방과 서방의 통치자이신 울제이투 칸의 이름으로 『세계의 역사(Tārīkh-i ʿĀlam)』라는 또 다른 책을 집필하였다. 그것은 세상의 역사이자 아담의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요약이며, 영원까지 계속된 이 제왕의 역사와 일화들, 즉 그출생의 시작부터 영원히 계속될 그 시점까지의 역사로서, 상술한 그 책의 속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라도 이 두 권의 방대한 책을 집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그것을 집필자—그의 승리가 커지기를!—인 내가 집필한다면 그 책을 이 첫 번째 책 안에 포함시키고, 만약 그 책을 다른 누군가가 집필한다면 그것을 이 안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처럼 방대한 작업이기 때문에 그것은 용서받고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축복받은 책을 1317년 11월 초에 바그다드—지고하신 신께서 보호하시기를!—에서 완성하였다.
김호동
라시드 앗 딘의 『집사』를 처음 접한 날로부터 벌써 40년이 흘렀다. 당시 유학생이던 나는 중앙아시아 근대사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이란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급과 중급까지는 그래도 두어 명이 같이 강의를 들었으나 3년차 고급반 과정이 되니 결국 나 혼자 남게 되었다. 학생 하나만 앉혀 놓고 강의하게 된 선생은 내게 무엇을 읽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는 꿈에서나 감히 읽어볼 생각을 하던 고전 중의 고전 『집사』가 어떻겠느냐고 말했는데,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 책을 모두 다섯 권의 시리즈로 완역한 뒤 압축본까지 새로 쓰게 되었다. 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해 적지 않은 오류가 있겠지만, 부족한대로나마 독자들의 역사 인식이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데에 작은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들의 질정과 격려에 기댈 뿐이다.
편역자 서문
프롤로그
제1편 칭기스 칸, 태동하는 제국
제1장 열조의 시대
제2장 칭기스 칸의 전반생
제3장. 대외 원정과 제국의 팽창
제2편 세계제국의 탄생
제4장 우구데이 카안의 세계 정복전
제5장 단명한 구육의 치세
제6장 뭉케의 혁명과 집권
제3편 쿠빌라이 카안의 시대
제7장 즉위와 내전
제8장 계속되는 도전
제9장 카안 울루스의 완성과 통치
제10장 후계자 테무르 카안
에필로그
역사란 드물게 일어나는 기이한 정황과 놀라운 사건들을 입수하고 정리하여 그것을 글로 적고 책에 기록한 것임은 지혜로운 분들이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각 시대의 좋고 나쁘고 중요한 사건들을 묘사하여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게 하고, 지나간 시대의 정황들이 다가올 시대에 알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유명한 군주나 강력한 국왕들에 관한 설명이 시대의 페이지 위에 영원히 남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학자의 임무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과 사실들은 시간의 경과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_「프롤로그」에서
칭기스 칸이 출생할 무렵인 12세기 중반 몽골 고원의 유목민들은 울루스(ulus)라 불리는 집단으로 나뉘어 살고 있었다. 울루스라는 말은 원래 ‘사람’, ‘백성’을 뜻하지만 ‘부족’, ‘나라’와 같은 뜻으로도 쓰였다. 당시의 대표적인 울루스로는 나이만, 케레이트, 타타르, 메르키트, 오이라트, 몽골 등이 있었다. 나이만은 고원의 가장 서쪽인 알타이 방면에 있었으며, 케레이트는 몽골 고원의 중심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고원의 동부에는 타타르가 있었고, 초원의 북방, 즉 바이칼 호 남쪽의 셀렝게 강 유역에는 메르키트가 있었다. 가장 서북부에 해당되는 이르티쉬 강 유역에는 ‘삼림민’이라 불리던 오이라트가 있었다. ‘몽골’은 고원 중북부의 헨티 산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논·케룰렌·톨라 세 강이 발원하는 ‘삼하의 원류’가 있는 부르칸 칼둔 부근이 이들의 근거지였다.
1206년 테무진은 오논강의 발원지에서 쿠릴타이를 열었다. 몽골 고원의 모든 유목민들이 자신의 지배 아래 통합되었음을 선포하고 ‘칭기스 칸’이라는 칭호를 취했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1155년부터 1167년까지 견해가 다양하지만, 현재 몽골국에서는 1162년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 그가 열 살 남짓 되던 해에 아버지 이수게이가 타타르인들에게 독살된 뒤 테무진 일가는 부르칸 칼둔 산지로 숨어들어가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와 형제들이 성장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호전되었다. 테무진은 옹기라트씨 데이 세첸의 딸 부르테와 혼인한 뒤 아버지의 의형제였던 케레이트의 토오릴을 찾아가 그의 가신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적대 세력을 하나씩 격파해나갔다. 그는 의형제 자무카와 결별했고 자신의 후원자 토오릴과도 충돌했으며 타이치우트·메르키트·타타르를 격파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골 고원에서 가장 강력한 두 집단인 케레이트와 나이만을 격파함으로써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칭기스 칸은 1227년 사망할 때까지 대부분의 대외 원정으로 보냈다. 먼저 몽골 고원 주변에 있던 키르기즈(1207년)와 오이라트(1208년)를 복속시킨 뒤 도주한 나이만의 왕자 쿠출룩을 추격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로 군대를 보냈다. 1209년에는 몸소 탕구트(서하)를 공격하여 이듬해 복속시키고, 마침내 1211년 여진의 금과 전쟁을 시작했다. 수도 중도를 포위당한 금은 1214년 몽골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화친하기로 했지만, 몽골군이 철수하자 그해 여름 황하 이남의 개봉으로 수도를 옮겼다. 몽골군은 다시 남하하여 화북을 점령하고 금과 전쟁을 계속했다. 한편 호라즘으로 보낸 사신단이 1218년 시르다리야 하반의 오트라르에서 학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칭기스 칸은 서방 원정을 시작했다. 1219~25년 7년간의 전쟁 끝에 신흥 대국 호라즘은 멸망했고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번영하던 많은 도시는 폐허로 변했으며 주민들은 살육을 당했다. 이슬람 측 사료에 살육된 사람들의 숫자가 크게 과장되어 있긴 하나 파괴의 실상이 참혹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칭기스 칸은 귀환한 뒤 다시 탕구트 원정에 나섰다가 1227년 사망했다. 그는 세계를 정복하고 모든 나라를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원정의 결과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농경 지역에 대한 지배가 현실화됨에 따라 그의 제국은 서서히 세계 제국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_「제1편. 칭기스 칸, 태동하는 제국」의 시작하는 글
1206년 호랑이해가 찾아왔다. 초봄에 칭기스 칸은 ‘아홉 개의 다리를 지닌 흰 깃발’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장엄하게 쿠릴타이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축복을 받으며 보좌에 앉았다. ‘칭기스 칸’이라는 칭호를 정한 사람은 콩코탄 출신 뭉릭 에치게의 아들, 즉 ‘텝 텡그리’라 불리는 무당 쿠케추였다. ‘칭’은 강하고 단단하다는 뜻이며, ‘칭기스’는 그 복수형이다. 카라 키타이 군주들의 칭호인 ‘구르 칸’이 강하고 위대함을 뜻하는 것과 비슷하다.
쿠릴타이가 끝나자 칭기스 칸은 나이만족의 부이룩 칸에 대해서 원정을 나섰다. 부이룩은 울룩 탁 부근의 수자우 강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 칭기스 칸과 그의 군대가 갑자기 들이닥쳐 그를 죽이고 그의 왕국과 천막, 부인과 자식, 말 떼와 가축을 빼앗았다. 쿠쉴룩 칸은 자기 부친 타양 칸이 살해되었을 때 도망쳐 숙부인 부이룩 칸에게 갔고, 메르키트의 군주 톡타이 베키도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곳으로 갔다. 이들 두 사람은 다시 도망쳐 나이만 지방의 변경인 이르티쉬에 피신했다.
1207년 토끼해 가을, 탕구트 지방이 반란을 일으켜 물자를 보내지 않고 명령도 받들지 않았기 때문에, 칭기스 칸은 다시 한 번 그곳으로 출정했다. 이번 원정에서는 그 지방 전체를 정복하고 당당히 귀환했다.
같은 해에 칭기스 칸은 알탄과 부라라는 두 사신을 키르기즈의 수령들에게 파견했다. 두 명의 키르기즈 수령이 사신을 극진히 환대하고, 각자 자기 휘하에 있던 부하들을 그 사신과 함께 보내, 흰색 송골매를 바치고 칭기스 칸에게 귀순했다.
탕구트와 키르기즈 지방에서 승리를 거둔 칭기스 칸은 1208년 용해에 자신의 목지로 돌아와 여름을 보냈다. 겨울에는 이르티쉬로 도망간 톡타이 베키와 쿠쉴룩을 치기 위해 출정했다. 도중에 전초병과 선봉대가 갑자기 쿠투카 베키를 수령으로 하는 오이라트족과 마주쳤다. 그들은 칭기스 칸의 군대에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귀순하여 향도 역할을 했다. 군대는 톡타이 베키와 쿠쉴룩을 급습하여 격파하고, 그들의 재산과 말 떼와 가축을 모두 약탈했다. 톡타이는 그 전투에서 죽었고, 쿠쉴룩은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다시 도망쳐 카라 키타이 지방의 구르 칸에게 피신하여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구르 칸은 그를 위로하고 ‘아들’이라 불렀다. 얼마 후 자신의 딸을 그에게 주었는데,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_「제1편. 칭기스 칸, 태동하는 제국」의 “제3장. 대외 원정과 제국의 팽창” 중 칭기스 칸의 즉위 장면
『집사』의 편찬자
라시드 앗 딘 Rashīd al-Dīn (?~1319년경)
이란 중부의 도시 하마단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익힌 제약과 의술 지식을 바탕으로 몽골 군주 일 칸의 궁정에 출사하여 문관으로서는 가장 높은 관직인 재상(vazīr)에 올랐다. 후일 울제이투 칸을 시해했다는 모략에 빠져 처형당했다.
역사학을 비롯해 신학, 식물학, 약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저작을 남겼다. 재상 시절 가잔 칸의 명을 받들어 집필한 『집사』는 몽골은 물론 이란, 중국, 유럽의 다양한 사료를 종합하고 전승을 수집하여 당시 몽골제국이 지배한 모든 세계의 역사를 종합 서술한 사서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이 책을 ‘최초의 세계사’라고 부르고 있다. 라시드 앗 딘 자신은 ‘중세 이슬람권 최고의 역사가’로 평가받으며, 특히 『집사』의 몽골 관련 내용은 오늘날에도 그 독보적인 사료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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