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지금 의자를 쳐서 바닥에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면 적어도 아래층 사람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겠지.”
스스로 존재를 증명해야 살 수 있었던 고독한 V양의 이야기
아름드리미디어의 새로운 시리즈 ‘초단편 그림소설’의 첫 권은 모더니즘 대표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이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타인의 무관심으로 언제부터인가 이름조차 희미해지고 지워진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군중 속의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씁쓸한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사람들에게 배경에 불과했던 V양이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아차린 단 한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름 없는 사람,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치부된 사람의 일생을 기록한 이 실험적인 소설을 통해, 고독 사회에서 벌어지는 ‘아무도 모르는 죽음’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인지 일깨우며,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초단편 그림소설’은 소설과 그림을 모두 유희하는 시리즈로, 그림소설은 삽화가 아닌 독립된 서사 방식을 가진 이야기로서 그림과 소설이 만나 작품을 폭넓게 감상할 수 있는 확장된 문학 장르이다. 시리즈 첫 권으로 선보이는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모더니즘과 여성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가 이름 없이 잊힌 사람, 특히 고독한 여성의 생을 관조적인 태도로 서술하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또 그림은 《관리의 죽음》과 《나의 괴짜 친구에게》를 통해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개성 있고 다양한 방식의 그림으로 보여준 작가 고정순의 그림이 결합되어 버지니아 울프의 주제 의식의 재발견을 꿈꾼다. 존재감이 없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는 시작되며, 화자의 희미한 기억 속에 잔상처럼 남겨진 V양의 모습을 이미지로 만날 때 우리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을 보게 되고,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외로움의 실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초단편 그림소설’ 시리즈는 그림 서사의 독립성을 나타낼 수 있는 방식으로서 장면 일부를 전면에 배치하였고, 선명한 이미지 구현을 위해 본문과 다른 종이를 사용했다. 부록에서 만나는 ‘오늘날 V양’의 삶을 다룬 고정순 단편소설(<이름이 되어>)를 통해서는 약 120년 전에 쓰인 《불가사의한 V양 사건》과 매우 비슷한 현대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 _ 17쪽
*부록*
이름이 되어 _ 고정순 49쪽
옮긴이의 말 _ 홍한별 58쪽
군중 속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것만큼 쓸쓸한 일은 없다고들 말한다. 이런 주제가 소설에도 종종 나오는데 역력한 비애감을 담곤 한다. 나 역시 V양의 일 이후로는 그 생각에 동감하게 되었다. V양과 언니의 이야기 같은 사례나 두 사람이지만 한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게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이들과 비슷한 자매를 누구든 바로 여남은 명은 술술 읊을 수 있을 것이다.(p.17)
피의 끈이 아니면 무엇이든 V양의 혈관 속을 타고 흐르는 어떤 액체가 나를 운명적으로 그 사람과 마주칠 수밖에 없게 혹은 그 사람을 통과하며 흩어놓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 나는 다른 누구보다 꾸준히 V양과 스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짧은 연극이 거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어떤 파티든 연주회든 전시회든 익숙한 회색 그림자가 그곳에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졌다.(p30)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이른 시간, 새벽에 눈을 뜨며 나는 소리 내어 외쳤다. 메리 V. 메리 V!! 누군가가 그 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확고하게 외친 것은 아마 처음이리라고 확신한다. 평소에 그 이름은 무색무취의 호칭, 그저 말을 맺으려고 쓰는 문장부호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반쯤 기대한 것처럼 내 목소리로 V양 본인이나 그 사람 닮은 모습을 내 눈앞에 불러내지는 못했다. 방안은 여전히 흐릿했다. 내가 외쳤던 소리가 종일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러다가 전처럼 길모퉁이 어딘가에서 V양을 마주치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안심하게 되겠거니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데 어디에도 V양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가 불편했다.(p.36)
해가 하늘에서 절반쯤 내려갔을 때 버스를 타고 큐 가든으로 블루벨꽃의 그림자를 만나러 간다면 어떻겠나! 아니면 한밤중에 서리 주 들판으로 민들레에서 흩날리는 솜털을 잡으러 간다거나! 내가 하려는 일은 이런 것들보다도 더 허황한 원정이었다. 집에서 나서려고 옷을 차려입다가 이 일에 이런 실질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고 또 웃었다. 메리 V를 만나려고 부츠를 신고 모자를 쓰다니! 말도 안 되게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V양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고 현관 알림판을 보았는데 V양은 우리도 대개 그러듯 출타 중이면서 동시에 집에 있는 것으로 모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아파트 문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고 살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림자도 죽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림자를 어떻게 묻나.(p.40)
버지니아 울프의 숨겨진 단편 소설!
무관심에 병든 사회가 만든 미스터리 《불가사의한 V양 사건》
“이 이야기는 런던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런던은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나고 문학 활동을 시작했던 도시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이 문장은 작품에 돈과 사람이 모이고 계층이 분화된 산업화 도시의 현실을 반영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군중 속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것만큼 쓸쓸한 일은 없다고들 말한다. 이런 주제가 소설에도 종종 나오는데 역력한 비애감을 담곤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배경뿐 아니라 주제까지 명확하게 밝히며, 소설이란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고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한 문학으로 이로서 《불가사의한 V양 사건》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정서적 거리는 훨씬 멀어진 런던 사회의 비애감이 반영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 속 V양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자매를 가리킨다. 하지만 V양들이 아닌 V양으로 불리는 건 두 사람의 희미한 존재감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약 15년 전부터 런던에서 살았고 그들은 종종 사교 모임이나 전시실에 나타나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지만, 사람들에겐 그저 한 편에 덩그러니 놓인 가구와 같은 존재였다. 이야기 속 화자는 어쩌다 V양을 만나면 연극처럼 정해진 대화를 나눌 뿐, 투명한 유리막을 사이에 둔 것처럼 삶의 온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자는 V양과 마주치는 일이 없어지면서 분명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 알아차리고, 얼마 뒤에 그것이 V양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V양의 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V양은 죽은 뒤였다.
그림책 작가 고정순이 그려낸 그림,또 다른 이야기가 되다!
“아름다운 미스터리를 그리고 싶었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타인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고독한 V양을 작품 속 중심인물로 끌어들이고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그들의 전기를 서술했다면, 고정순은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V양의 모습과 상황을 그림으로 재서술한다.
소설 속에는 두 자매가 ‘V양’이라는 이름을 공유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두 사람이 런던에 살고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전부지만 그들과 기밀하게 지낸 사람이라면 분명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정순은 붉은 가지의 똑같은 얼굴, 하나로 연결된 얼굴, 서로 다른 얼굴로 두 자매를 세 번 등장시키며 그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존재감을 부여한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이 이야기의 주제를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가 단절된 관계 속에 있을 때, 서로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게 된다는 현대인의 고독한 현실을 그림을 통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메리 V. 메리 V!” 사라진 V양의 이름을 외치며 화자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굉장히 낯선 어색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는 그의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몹시 황당했다. 화자가 V양의 이름을 또렷하게 불러본 적이 없었으니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의 글과 그림에서는 V양의 행동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묘사 대신 고정순은 의자 이미지를 사용해 V양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지금 의자를 쳐서 바닥에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면 적어도 아래층 사람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겠지.” V양 사건을 회고하기 앞서 등장하는 화자의 이러한 서술은 죽은 V양의 집을 찾아갔을 때 목격한 방 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고정순은 V양이 살아 있을 때는 의자가 세워진 것으로 이야기에 등장시키지만 죽은 이후에는 의자를 넘어뜨리며 V양의 죽음을 알린다.
버지니아 울프 X 고정순
‘초단편 그림소설’ 첫 책
소설과 그림이 보여주는 새로운 문학 세계
아름드리미디어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초단편 그림소설’은 그림이 고유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학작품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림과 소설이 결합된 문학 시리즈이다.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그 첫 권으로, 20세기 모더니즘 대표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과 이 시대의 그림책 작가 고정순의 아름다운 그림이 만났다.
약 120년 전에 쓰인 이 작품은 런던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당시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대표되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죽음을 실험적으로 기술한 작품이다. 인물의 심리와 내면의식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탁월한 버지니아 울프는 화자가 피상적인 교류가 전부였던 V양의 부재를 자각하는 과정에 집중했고, 고도로 발전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무관심한 죽음을 꼬집는 이 이야기는 V양의 다채로운 모습과 미스터리한 죽음을 감각적으로 그린 고정순의 그림으로 더 폭넓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장치로서 장면 일부를 전면으로 배치하여 그림 서사의 독립성을 보여주고 본문과 다른 종이를 사용해 선명한 이미지 구현하였으며, 부록으로 수록된 고정순 단편소설 <이름이 되어>에서는 《불가사의한 V양 사건》처럼 이름이 지워졌던 오늘날의 V양에게 ‘이름이 되어’ 존재감을 전하려는 고정순의 이야기를 담았다.
현대인의 고독을 다룬 버지니아 울프의 《불가사의한 V양 사건》과 외모지상주의의 민낯을 밝힌 에밀 졸라의 《보완물》(근간, 그림 서수연)으로 이어지는 ‘초단편 그림소설’ 시리즈는 이미지의 시대에 우리가 꼭 읽어야 할 고전 단편 문학을 그림소설 장르의 형식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글 |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영국 작가이며 ‘의식의 흐름 기법’의 대가가 불린다. 작품 속에서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며 인간의 내면 세계를 치밀하게 파고 드는 울프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뿐 아니라 에세이 《자기만의 방》, 《3기니》 등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 받고 있으며,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존재감을 잃은 사람들의 일대기를 그린 실험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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