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나카하라 주야의 시작과 끝
『염소의 노래』『지난날의 노래』 첫 완역
나카하라 주야는 우리나라에선 본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독스」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더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권위 있는 문학상이 시인들의 대표적 등용문일 정도로 인정받는 시인입니다. 그는 20세기 초의 전위적 예술 실험이었던 다다이즘에 심취하여 문학관을 발전시켰고 보들레르와 랭보로 대표되는 상징주의 시문학과 베르그송의 생철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여기에 미야자와 겐지가 추구한 관념적 실험 정신과 파스칼의 신학론도 발견할 수 있는 주야의 문학 세계는 일본 문학 내에서도 독보적으로 독특한 시감과 정서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권위 있는 문학상의 존재 등을 보면 우리나라로 치면 이상과 가장 흡사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0대 초반부터 전통 시가인 단카를 신문에 투고하여 연재를 할 정도로 조숙한 문재文才였으며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관에 영향을 받은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그가 공식적으로 남긴 시집은 단 두 권, 바로 『염소의 노래』와 『지난날의 노래』입니다.
‘저주받은 시인’에게 허용된 짧았던 화양연화
예술적 삶과 추구의 절정으로 드러난 『염소의 노래』
나카하라 주야가 인생 전반에 걸쳐 쓴 시들을 모아 꾸준하게 준비한 『염소의 노래』는 후원자를 받아 출간을 계획했지만 단 열 명만을 모으는 실패를 겪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문단에서 꾸준히 거론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마침내 출판사에서 공식적으로 출간된 『염소의 노래』는 비평적 찬사와 함께 그의 대표작이 됩니다.
주야와 서로 힐난하면서도 문학적 존재감을 인정하는 관계였던 다자이 오사무, 그의 전기를 저술하여 노마문예상을 수상한 오오카 쇼헤이, 연적이자 동지였으며 향후 일본 문학을 주도하게 될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 등 같은 시대를 살았던 문학계 거장들이 하나같이 증언하는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였던 나카하라 주야는 평생을 오직 시인으로서, 방황과 가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염소의 노래』가 출간된 직후는 삶의 절정기가 시작될 때였습니다. 그는 문학계에 오래 두고 회자될 고바야시 히데오, 하세가와 야스코와의 삼각관계 스캔들로 인한 사랑의 방황을 멈추고 결혼을 했고 첫 아들을 봤으며 랭보의 시들을 번역한 『랭보시집』은 상업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또한 낯설게만 여겨졌던 그의 독특한 시들에 대한 문단의 이해가 높아지고 인정을 받으면서 비평적 평가가 올라가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비극으로서의 삶, 나카하라 주야의 마지막
아들과 자신의 죽음을 위한 초현실적 장송곡 『지난날의 노래』
그러나 그렇게 순조롭게 올라가던 인생의 상승기에, 비극이 닥칩니다. 첫 아들 후미야가 결핵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충격을 받아 정신착란까지 일으킨 그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마지막 시집이 될 『지난날의 노래』를 준비합니다.
『지난날의 노래』는 아들의 죽음을 치루고 절망에 빠진 채 자신의 죽음마저 앞두게 된 그가 만들어낸 죽은 아들에게 바치는 추모이자 평생 자신을 사로잡았던 광기와 죽음에 대한 목도이기도 합니다. 『지난날의 노래』에서 그는 주마등이 지나는 것처럼 자신의 지난 삶들을 떠올리며 기억의 편린들을 변형하고 섞고 언어의 재조합을 통해 특유의 낯선 감각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본작이 전작 『염소의 노래』에 비해 형식적으로나 상대적으로도 침잠하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그 과정에 기쁨이나 열광이 아닌 죽음과 고통의 정서가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라앉은 정서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쳐, 그가 바라보는 기억의 세계는 관조에 가까운 냉정함이 섞인 비애, 생의 부조리에 관한 허탈한 웃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그는 지극히 현대적인 공명을 가능케 하는 문학적 정점에 도달합니다.
그는 결국 아들을 떠나보낸 다음 해에 고바야시 히데오에게 『지난날의 노래』의 원고를 주며 출간을 맡기고 결핵성뇌막염으로 요절합니다. 그의 나이 서른 살이었습니다.
인생에 충돌하듯 시와도 충돌한 시인, 고백자가 쓴
어둡게 빛나는 ‘본질’로서의 시들
나카하라 주야는 의성어와 발성의 감각을 중시하면서 예술가의 내면을 직시하는 개념을 전개하는 독특한 스타일과 실험을 추구한 작가로 ‘오로지 예술로서의 시문학만을 위해 살았던 저주받은 시인’의 대명사로서 다양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소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들에는 시대를 앞서간 전위적 실험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특한 감성이 어우러져 있기에, 온전히 옮겨지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토록 미뤄졌기에 지금 더욱 깊은 이해와 새로운 발견으로 다가올 수 있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염소의 노래』와 『지난날의 노래』는 나카하라 주야가 발표한 공식적인 단 두 권의 시집입니다. 말 그대로 작가의 시작과 끝에 이르는 전부를 보여주는 대표작들로서 국내에서는 최초의 완역본이기도 합니다. 나카하라 주야의 예술과 삶을 총체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로서 『염소의 노래』와 『지난날의 노래』는 신선한 문학적 경험이 될 것입니다.
2019년에 처음 우리말 완역으로 『염소의 노래』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에 『지난날의 노래』도 소개함으로써 나카하라 주야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시집 2권을 모두 완역하였습니다. 그간 소량 제작되어 품절된 이 책들에 대한 재간 요청이 많았으나 사정상 미루던 중, 고민 끝에 펀딩 방식으로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 재쇄에서는 개별 도서가 아니라 두 권을 묶어서 래핑을 하고, 래핑 위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으로 세트화하여 제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기존 1쇄본과 비교하여 약간의 디자인적 변경이 있을 예정입니다.
편집자로서 나카하라 주야가 이룬 독자적인 시적 성취와 미학에 대해선 한 점 의심이 없으며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시들입니다. 이미 나카하라 주야를 알고 그의 작품 세계를 사랑하시는 분, 그리고 나카하라 주야라는 작가를 새롭게 알고자 하는 분 들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현대 일본 최고의 시인.
-오오카 쇼헤이(소설가)
나카하라 주야의 어법은 일본 근대시 문맥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계보에도 들어가지 않는 시인이다.
-요시모토 다카아키(사상가)
죽은 후에 보니, 역시 나카하라다. 수준이 다르다.
-다자이 오사무(소설가)
그의 웃음이 일그러진 그대로를 따라 노래한 시도 일그러졌다. 이것은 시인이 만들어낸 조화라고 할 수 없다. 나카하라 주야는 인생에 충돌하듯이 시에도 충돌한 시인이었다. 그는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백자였다.
-고바야시 히데오(평론가)
‘봄밤’ - 『염소의 노래』 12P
그슬린 은색 창틀 안에 오붓하게
가지 하나의 꽃, 복사빛 꽃.
달빛을 받고 실신해 버린
정원의 흙 표면은 먹으로 그린 점.
아아 아무 일 없어 아무 일 없어
나무들 쑥스럽게 돌아다녀라.
이 어쩐지 공연한 무슨 소리에
희망은 없노라니, 그렇다고 또, 참회도 없노라니.
산 속 고요히 사는 목공에게만,
꿈속 대상隊商들의 발걸음도 어렴풋 보이리.
창문 안쪽에는 산뜻하면서, 어슴푸레한
모래의 색을 띠는 비단 옷차림.
넓찍한 가슴팍의 피아노 소리
조상은 없고, 부모도 사라졌지.
개를 묻은 자리는 어디였던가,
사프란 꽃빛으로 끓어오르는
봄밤이로다.
‘임종’ 부분 - 『염소의 노래』 15P
가을 하늘은 엷은 먹색 칠해진
검은색 말의 눈동자가 가진 빛
물기 말라서 떨어지는 백합꽃
아아 마음은 공허해지는도다
신神도 없는데 이정표도 없어서
창문 가까이 있던 여인 갔노라
하이얀 하늘 눈이 멀어 있었고
하이얀 바람 차갑기만 했더라
창가에 앉아 머리를 감노라면
그 손과 팔이 다정히 느껴졌지
아침 햇살은 넘쳐흐르고 있지
물방울 소리 뚝뚝 듣고 있었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 『염소의 노래』 54P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오늘도 눈이 조금 내려 쌓이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오늘도 바람마저 불어 지나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예를 들자면 여우 가죽을 댄 옷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눈이 조금 내려서 오그라들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아무런 희망 없이 바람도 없이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권태로움 속에서 죽음 꿈꾸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아프고 아프도록 두려움 들고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딱히 한 일도 없이 하루 저물지……
‘봄밤’ - 『염소의 노래』 12P
그슬린 은색 창틀 안에 오붓하게
가지 하나의 꽃, 복사빛 꽃.
달빛을 받고 실신해 버린
정원의 흙 표면은 먹으로 그린 점.
아아 아무 일 없어 아무 일 없어
나무들 쑥스럽게 돌아다녀라.
이 어쩐지 공연한 무슨 소리에
희망은 없노라니, 그렇다고 또, 참회도 없노라니.
산 속 고요히 사는 목공에게만,
꿈속 대상隊商들의 발걸음도 어렴풋 보이리.
창문 안쪽에는 산뜻하면서, 어슴푸레한
모래의 색을 띠는 비단 옷차림.
넓찍한 가슴팍의 피아노 소리
조상은 없고, 부모도 사라졌지.
개를 묻은 자리는 어디였던가,
사프란 꽃빛으로 끓어오르는
봄밤이로다.
‘임종’ 부분 - 『염소의 노래』 15P
가을 하늘은 엷은 먹색 칠해진
검은색 말의 눈동자가 가진 빛
물기 말라서 떨어지는 백합꽃
아아 마음은 공허해지는도다
신神도 없는데 이정표도 없어서
창문 가까이 있던 여인 갔노라
하이얀 하늘 눈이 멀어 있었고
하이얀 바람 차갑기만 했더라
창가에 앉아 머리를 감노라면
그 손과 팔이 다정히 느껴졌지
아침 햇살은 넘쳐흐르고 있지
물방울 소리 뚝뚝 듣고 있었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 『염소의 노래』 54P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오늘도 눈이 조금 내려 쌓이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오늘도 바람마저 불어 지나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예를 들자면 여우 가죽을 댄 옷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눈이 조금 내려서 오그라들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아무런 희망 없이 바람도 없이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
권태로움 속에서 죽음 꿈꾸지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아프고 아프도록 두려움 들고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딱히 한 일도 없이 하루 저물지……
‘부끄러움’ - 『지난날의 노래』 10P
무슨 까닭에 마음 이다지도 부끄러운가
가을 바람이 하얀 날 산그늘이었지
모밀잣밤나무 마른 잎들 움푹 팬 곳에
나무줄기들은 괜스레 노숙하게 서 있더랬지
나뭇가지들 서로 얽은 언저리 슬픈 기색의
하늘은 죽은 아이들의 망령에 가득차 깜박였었지
하필 그때 저쪽 편 들판 위는
아스트라한 무리 사이 누비는 고대 코끼리의 꿈이었지
모밀잣밤나무 마른 잎들 움푹 팬 곳에
나무줄기들은 괜스레 노숙하게 서 있더랬지
그날 그 나무줄기 틈 도탑던 눈동자
누이 같은 빛 네가 있었더랬지
그날 그 나무줄기 틈 도탑던 눈동자
누이 같은 빛 네가 있었더랬지
아아! 지나간 날의 설핏 타올라 선명해지는 순간순간은
내 마음 무슨 까닭에 무슨 까닭에 이다지도 부끄러운가……
‘추일광란’ 부분 - 『지난날의 노래』 43P
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없는 거야
나는 빈손 맨주먹이야
심지어 그걸 한탄도 않지
나는 마침내 무일푼이야
그렇다 해도 오늘은 날씨가 좋아
아까부터 수많은 비행기가 날고 있지
――유럽은 전쟁을 일으키려나 안 일으키려나
누가 그런 거 알 바던가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아서
하늘의 푸름도 눈물에 촉촉하네
포플러가 펄럭펄럭 펄럭펄럭하고
아이들은 좀 전에 승천했지
‘춘일광상’ 부분 - 『지난날의 노래』 94P
사랑하는 아이가 죽었을 때는,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사랑하는 아이가 죽었을 때는,
그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어.
하지만 그래도, 업(?)이 깊어서,
여전히 더 살게라도 되거들랑,
봉사하는 마음이, 드는 거에요.
봉사하는 마음이, 드는 거에요.
사랑하는 아이는, 죽은 거니까요,
분명히 그야, 죽은 거니까요,
이제는 어떻게도, 안 되는 거니까요,
그 아이를 위해서, 그 아이를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안 돼.
봉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안 돼.
1907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13세에 『보초신문』에 기고한 단카가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중퇴와 자퇴를 반복하며 문학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고바야시 히데오, 오오카 쇼헤이, 다자이 오사무 등 향후 일본 문학계를 이끌 문인들과 인연을 맺고 다다이즘, 상징주의, 생철학 등이 융합된 자신만의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 니혼대학 자퇴 후에는 프랑스어학원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를 배웠고 베를렌, 랭보의 시를 번역했다. 다수의 동인과 기고 활동 중에 첫 시집 『염소의 노래』를 발표하고 상업적 실패를 겪지만 이후 문단의 재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장남 후미야가 소아결핵으로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고바야시 히데오에게 마지막 시집 『지난날의 노래』의 출간을 맡기고 1937년에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동同 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고전문학을 전공하여 2006년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고전의 사상적 배경과 현대적 해석, 근대 동아시아의 일본어 시가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일본 중세 은자문학과 사상』, 『조선의 미를 찾다: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재조명』, 『한반도와 일본어 시가 문학』이 있으며 옮긴 책에 『쓰레즈레구사』, 『몽중문답』, 『단카로 보는 경성 풍경』, 『한 줌의 모래』, 『요시노 구즈』, 『흙담에 그리다』, 『어느 가문의 비극』 등이 있다.
1) 19,800원 펀딩
<염소의 노래 · 지난날의 노래> 도서 1세트
참여자 명단 내지 인쇄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 130*210mm / 무선제본 / 총 224쪽(각 권 112쪽) / 2024년 8월 14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