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2021년 12월 바쁜 출근길 아침,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한 무리의 장애인들이 나타났다.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와 회원 들이 지하철에 모였다. 1년여가 지나자, 서울교통공사는 이들이 모인 지하철 승강장을 무정차 통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말부터는 승강장에 머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시민의 발, 지하철은 장애인권을 외치는 이들 앞에서 굳게 문을 닫았다. 뜨겁던 취재 열기는 어느새 사그라들었고 많은 시민들도 잊었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침 8시 지하철 승강장에 모이고 있다. 5월 29일이면 그들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600번째 선전전을 벌일 것이다.
연행되고 쫓겨나고 “욕설과 혐오의 무덤”에 파묻히면서까지 출근길 지하철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필 지하철인가?’, ‘정치를 하려면 국회로 가라’, ‘합법적으로 요구하라’는 말에 "감히 출근길에 장애인들이 집단으로 지하철을 타는 망극한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직접 답한다.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은 박경석과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정창조가 함께 쓴 책이다. 장애인 이동권, 노동권, 탈시설과 자립생활 권리 현안은 물론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로서 출근길 지하철이 어떻게 모두를 억압하는지, 장애해방과 비장애인의 해방은 어디에서 연결되는지, 서로 다른 우리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더 나은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지 박경석이 지난 세월 겪어온 장애인운동과 그 바탕이 된 생각을 성실하게 답하고 충실하게 기록했다. 이 책에는 세상이 제일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직접 몸 부딪쳐가며 그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온 활동가의 자부심이 담겨 있고 박경석이 동지들과 함께 일군 뜨거운 투쟁 현장의 즐거움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경찰의 방패에 가로막힌, 승강장 바닥에 내팽개쳐져 시민들의 발뒤꿈치를 맴돌던 박경석의 말을 길어 올리면 한국 사회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냉정한 현실에도 결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다정과 치열한 현장에서 더욱 빛나는 위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빨갱이 장애인’ 정태수와 박흥수를 만나 장애인운동에 말려든 박경석과 박경석을 만나 장애인운동판에 동화되어버린 정창조처럼 모두의 해방으로 향하는 장애인운동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장애인에게도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건 맞지만 예산에 한계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장애인들이 시설 밖에 나오면 가족들이 너무 힘들잖아. 아무리 그래도 불법행위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저렇게 과격한 방식 말고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이가 있다면 《출근길 지하철》에서 충분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서 시작되었다.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은 두 저자가 함께 정한 주제에 따라 정창조 활동가가 박경석 활동가에게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그 답변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지난 1년간 짧게는 두세 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씩 스무 번 넘도록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정창조가 박경석의 활동지원사였던 8년 가까이의 일상과 그보다 긴 시간 투쟁 현장에서 보고 들은 말들도 구석구석 녹아 있다. 나는 편집자로서 두 저자가 이 책을 위해 이야기 나누던 자리에 번번이 끼어 앉아 답답한 질문을 해대며 설명을 보채곤 했다. “그동안 그의 ‘책’은 문자로 옮겨지지 않았을 뿐, 현장 곳곳에서 이미 차근차근 쓰이고 있었”다는 공저자 정창조의 말처럼 현장에서 박경석의 말이 갖는 힘을 목격하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책이었기에 전장연 투쟁 현장을 따라다니며 그의 말과 태도를 수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성실하게 작업을 준비했어도 박경석은 개연성이라곤 없는 사람이었고, 의문이 남지 않도록 설명을 더하고 원칙에 따라 문장을 교정하는 작업 방식에 도통 들어맞지 않았다. 지하철행동을 할 때 “욕설과 혐오의 무덤에 파묻히는 것 같았다”면서도 “너무 쉽게 쟁취한 권리들은 또 쉽게 무너져 버리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 치열한 싸움의 역사가 있어야, 새로 쟁취한 권리들도 토대가 탄탄해지는 거거든” 하질 않나, 한참을 자랑하던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하루아침에 폐지되었다면 좌절해야 마땅할 상황인데도 앞으로 그 일자리가 전국적으로 확장될 때까지 싸우겠다질 않나. 그런가 하면 배고프기 싫어서 단식투쟁을 안 하려고 꾀를 쓰고 있었다더니 결국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굶어 죽을 작정을 해버린다. “내 말이 다 맞는데 세상이 안 바뀌고 사람들도 조직이 안 되면 열받지 않아요?” 하고 유도 심문을 해봐도 “관계를 맺는다는 게 원래 다 쉽기만 한 게 아니잖아. 서로가 서로를 지지할 수 있으려면 교류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고. 그러니 내 기대가 당장 충족이 안 됐다고 맨날 열을 내면은 내 혈압만 올라가는 거거든. 실패를 하면서도 차분히 시간을 두고서 그 설득의 과정, 조직의 과정 자체가 갖는 의미를 계속 되새기는 게 그래서 정말로 필요한 거죠” 하고 만다. 나는 그의 말을 붙잡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무 멋있어 보이게 만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던 애초 기획 의도는 그렇게 그를 몇 번 만나기도 전에 폐기되고 말았다.
내게 남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의 말을 최대한 덜어내지 않고 잘 전달하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박경석의 비유는 탁월했고 그가 선택한 단어들은 힘이 있었으나 맞춤법이라는 틀 안에 맞춰 넣으면 이상하게 말맛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너무나 자유분방해서 해방감을 주었다. 결국 개연성도 문장을 교정하는 엄밀한 원칙도 포기하고 다만 가능한 한 내가 본 실제에 가까운 박경석을 만나게 하겠다는 목표만을 남겼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면 여러분은 이 책의 첫 번째 청자이자 독자인 내가 그랬듯 박경석과 교류하며 서로를 지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닫힌 문을 열고 나와 박경석의 곁에 서줄 여러분을 부르는 책이다.
- 편집자 이은정
도대체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저는요, 이 질문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봐요. 이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은 이 사회의 본질이란 게 아주 정확하게 드러나거든. 사실 뻔하지, 뭐. 지하철에서 이렇게 싸우는 게 그만큼 영향력이 크기 때문인 거거든요. 이 투쟁이 이 사회의 당연한 일상들을 뒤흔들어 놓으니까. 노동자들이 돈 벌러 직장에 가야 하는데 늦으면 안 되잖아요. 학생들도 지각을 하면 성적이 깎이잖아요. 이 세상에 뭔 일이 벌어지건, 시민들은 1분이라도 늦으면 다들 큰일이 나는 거야.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까 언제부턴가 딱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야! 지하철이란 곳이 진짜로 노동력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구나. 그렇게 정시성에 맞춰 컨베이어 벨트가 잘 굴러가야 노동자들도 공장에 가고, 학생들도 쓸모 있는 노동력으로 성장을 해가지고 자본도 계속 돈을 벌겠구나. 그래야 이 나라도 계속 성장을 할 테고.
억압과 차별이란 게 대부분 그래요. 딱 마음을 나쁘게 먹고서 저놈의 자식들 쓸모도 없고, 꼴 보기도 싫으니까 혐오하고 차별해야지! 이러는 경우도 물론 있긴 하죠. 그런데 대부분은요, 그냥 옆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을 방치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동조해버리면서 억압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데 복무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이 사회의 차별을 묵인하고서, 큰 관심 안 두고 그냥 살아가는 게 별일이 아닌 거 같죠?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태도가 다 누구한테는 엄청난 재앙이 되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런 태도들이 지속되면서 세상은 계속 나아지지가 않는 거지.
“바로 그 비용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자꾸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말만 하는데, 국가 스스로의 계획도 안 지키지 않았습니까?”
박경석이 면담 장소 바깥으로 나오자, 기자들이 앞다퉈 그를 둘러쌌다. 기자들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지속할 것인지 연이어 물어왔다. “비용 때문에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오 시장과 서울시 복지실장의 말에 주목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자들이 떠난 자리, 박경석이 조금은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말했다. “이 사회가 T4 사회인 걸 오늘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았나? 장애인들이야 죽어나가건 말건, 권리를 빼앗기건 말건, 다 돈 문제랑 지하철 막히는 거에만 관심 있지.”
자유로운 삶이란 건 확실히 불안과 고난을 동반해요.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건, 애초에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비장애인들도 실제로 일상 속에서 불안과 고난에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더라도 불안과 고통이 없는 자유로운 일상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는 거거든. 그거를 헤치고 나가는 게 사람다운 삶이란 거지.
시설에서 안전하게 보호해줄게, 나가면 고난이 펼쳐질 거야, 라고 하는 말들은요, 중증장애인들에게 그러한 자유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거랑 다름이 없어요.
사실 난 그 광경이 너무 즐겁더라고. 우리 존재 자체가 임금노동에 대해서 이렇게나 굉장히 반역적이라는 걸 잘 보여준 거잖아. 하하. 그런데 그만큼 고민도 깊어지기도 했어. 노동권 요구하고 있는데 그런 광경이 계속 펼쳐져봐, 고민을 안 할 수가 있나. 스스로 계속 되묻게 되더라고. 이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들어가서 진짜 일을 할 수가 있긴 한 걸까?
그런데 과거를 잘 돌이켜보니까, 최중증장애인들이 정말로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해온 건 또 아니더라고요. 중증장애인들은 그동안 사회와 맞서 싸워오면서, 사회적 변화라는 거를, 자기 권리라는 거를 스스로 만들어왔잖아.
이동권 투쟁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중증장애인들이 싸워가지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저상버스를 만들냈잖아. 이거 장애인들에게도 굉장히 유용한 거지만, 모든 사람이 대중교통을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낸 거거든. 이건 정말로 전체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동의 ‘권리를 생산’한 거 아닌가?
어쩌면 박경석은 이보다 훨씬 더 우아한(?) 방식으로 정치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청와대 영빈관 기습시위 사건’이 있기 불과 3년 전, 그는 국회의원 후보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끝내 거절했고, 결국 거리에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가 남은 자리에 더해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세련된 언어로 말을 할 줄도, 글도 읽을 줄도 모른다. 하다못해 집 밖을 나오는 게 익숙하지 않고,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크게든 작게든 어떤 자부심을 박경석과 공유하고 있다. “내가 거리에 나와 동지들과 함께하면 세상이 바뀐다. 나는 절대로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
박경석의 정치는 언제나 이 자부심에서부터 출발한다.
가장 중요한 건요, 이렇게 그 쪼끄만 한 차로에다가 우리 주권이 행사되는 망명정부를 세워두면은 힘없는 사람들에게도 주권자로서의 자부심이 생긴다는 거예요. 생산성 없다고 여태껏 시설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 방구석에 처박혀서 가족들이 밥 챙겨주면 그거만 얻어먹고 하루 종일 누워 있던 사람들이 지금껏 살면서 어떤 자부심을 느껴봤겠어요. 굳이 집회 안 나와도 무슨 일인지 알리는 건 유인물을 나눌 수도 있고 설명할 수도 있는데요, 그건 지식일 뿐이지 자기 이야기인데도 자기 이야기로 잘 여겨지지도 않아.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한 차로 더 먹고서 자기 주권이 행사되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가져봐. 이게 그냥 유인물 보는 거랑 차원이 다른 엄청난 성취감이라는 게 생기는 거거든. 이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거야.
그때 그 농성이 없었어 봐. 그때 흥수 형 말 안 듣고 착하게 잘 살았으면, 지금쯤 나도 꽤 성공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때 그 경험을 해보니까, 내가 지금처럼 사는 게 운명이 되어버린 거지.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그때 차린 그 농성장, 흥수 형이 운명이라고 표현했던 그곳 때문에, 아이고 요놈의 운명 그러면서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생각. 흥수 형이랑 태수는 2000년대 초반에 둘 다 세상을 떠나버려 가지고 그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는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난 살아남아 가지고. 또 살아남았다는 게, 이게 힘든 거거든. 운명이라고 하고서 그렇게 싸워왔던 사람들이 먼저 죽어버리면, 살아남은 사람은 고거 또 배신할 수도 없어.
우리가 일상을 멈춰 세우면서 싸워온 건요, 바로 이 일상의 당연함이라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이 사회에다가 딱 하고 보여주기 위한 거예요. 그 일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서 그냥 살아가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김도현이한테 물어봤지. 야,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이제 뭐가 남았냐. 쟤네 관심도 없는데 좀 압박을 가할 수 있는 투쟁이 뭐냐? 이랬더니 야가 이제는 삭발하고 단식밖에 안 남았대. 이야! 이거 한 명이라도 단식하겠다고 결의하면은 나도 같이 굶어야 할 판이잖아. 나 배고프긴 싫은데. 그래서 막 안 하려고 꾀를 쓰고 있었는데, 강경파들이 갑자기 어쩔 수 없다 이거밖에 안 남았다 이러면서 단식을 시작하자고 하는 거야. 그러고 몇 명이 바로 결의를 하대? 그럼 어떻게 해. 나도 이제 어쩔 수가 없잖아. 결국 나도 한다고 결의를 했지. 그런데 그때 시청 점거한 장소가 하필이면 또 공무원들 식당 앞이었어요. 아니, 그래 단식은 겨우 한다고 결의를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공무원들은 밥 다 먹고 있는데 그거 보면서는 도무지 못할 거 같은 거야. 이건 진짜 고문이잖아.
이 세상에는 사회가 규정해놓은 ‘정상인’의 속도에 못 따라간다는 이유로 곧바로 더 이상 이 사회가 감각할 필요도 없다고 치부되어 버리는 존재가 정말 많잖아요.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면 정말로 안 되는 거죠. 장애인들이 딱 그렇게 사회에서 배제가 된 거고, 차별을 받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이게 어디 우리한테만 적용되는 이야기겠어? 누구든 그 속도로부터 낙오가 되면은 그렇게 되는 거야.
장애인이 이렇게 직접행동하면서 싸우는 과정에서 바닥에 내려와서 긴다는 거는 그 자체로 사실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거예요. 사회가 가지고 는 관점 자체를, 관계 자체를 완전히 뒤집는 거니까. 장애인이 다는 건 그동안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자기 불쌍함을 부각해서 동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었죠. 실제로 장애인들이 먹고살려고 구걸을 할 때 그렇게 많이 하기도 했고. 그런데 긴다는 게 장애인들이 싸우는 수단이 되는 순간, 이 긴다는 행위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요. 구걸하는 거에서 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거로 바뀌고, 그거는 이제 더 이상 ‘불쌍’해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불온’해 보이는 거야.
지금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씨앗을 심어두는 거죠. 다른 속도를 가진 존재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딱 이 세상이 감각하게 만들어놓는다면은, 이 싸움이 이후에도 계속 누군가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감을 안겨다 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 사회의 기준을, 패러다임을 바꿔내겠다는 우리 싸움의 씨앗은 지금은 아주 작은 점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선이 될 수 있고, 면이 될 수 있고, 나아가서 이 세상 전체가 될 수도 있는 거야.
프롤로그 — 시민이 되고 싶습니다
1 — 출근길 지하철은 왜 안 되는 건가요?
2 — 우리의 생명은 ‘비용’보다 소중하다
3 — 탈시설이란 말이 어렵다고요? 그럴 리가요
4 — 우리는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을 합니다
5 — 여기만이, 우리가 정치적 주체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지예요
6 — 온건하게 합법적으로 권리를 요구할 순 없냐고요?
7 — 해방되려면, 원형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 돼요
8 — 지금은 아주 작은 점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기록의 말
지지의 말들
박경석
1960년 대구 찐한 보수 동네에서 태어났다. 1979년 영남대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수색대로 근무했다. 1983년 제대한 그해 8월, 주일날 교회 가라는 엄마 말 안 듣고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딩을 하다가 졸지에 장애인이 되었다. 쫄딱 망했다 생각하고 스스로 5년간 집구석에 갇혀 죽음을 친구로 사귀었다. 1988년 서울장애자복지관 직업훈련소에서 데모하는 장애인을 만나 장애인운동을 알게 되었다. 1991년 다시 숭실대 사회사업학과에 들어가 착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으나 취업에 실패했다. 갈 곳이 없어 노들장애인야학에 진지를 꾸리고 본격적으로 장애인운동을 가문의 영광스런 전망으로 삼고자 투쟁했다.
2001년 서울역 선로를 점거한 이후 23년 동안 지하철 승강장을 주요 무대로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시민의 권리를 외치고 있다.
2021년 12월 3일, 출근길에 지하철에 탑승한 일을 계기로 욕설과 혐오의 무덤에 파묻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버넌트처럼 살아남기 투쟁 중이다.
정창조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고 강의를 하며 살던 중 우연히 연이 닿아, 2016년 가을 박경석의 활동지원 노동을 시작했다. 얼마 후 진보적 장애인운동판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투쟁의 의미를 고민하고 글로 옮기는 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전장연 노동권위원회 간사, 박종필추모사업회 사무국장 등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변방으로 밀려난 것들, 주류 세계가 작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들에서 거대한 변혁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흥미가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가 낳는 억압과 재앙 들에 어떻게 실천적, 이론적으로 저항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살기 위해 게으르게나마 분투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 사유의 전선들》 《유언을 만난 세계: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공저) 등을 썼고, 《마르크스는 인간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번역했다.
1번. 21,600원 펀딩: 마감되었습니다.
· <출근길 지하철> 도서 1부
· 박경석 북토크 티켓 1장
· 초판 1쇄 후원자 명단 인쇄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2번. 17,100원 펀딩
· <출근길 지하철> 도서 1부
· 초판 1쇄 후원자 명단 인쇄
· 펀딩 달성 단계별 추가 마일리지 적립
- 일시: 2024년 7월 10일 수요일 오후 7시
- 장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12길 7 창비서교빌딩 50주년 기념홀 (지하 2층)
- 강연자: 박경석, 정창조
- 사회자: 장혜영
- 인원: 80명
- 티켓 금액: 5,000원
- 일시: 2024년 7월 10일 수요일 오후 7시
- 장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12길 7 창비서교빌딩 50주년 기념홀 (지하 2층)
- 강연자: 박경석, 정창조
- 사회자: 장혜영
- 인원: 80명
- 티켓 금액: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