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 『백래시』와 『다크룸』의 저자 수전 팔루디의 또 다른 대표작 ★
6년간 미국 곳곳에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들’을 인터뷰한 르포르타주
박탈감으로 들끓는 현대 남성의 초상화를 그리고
수그러들지 않는 젠더 전쟁의 근원을 추적하다!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 리부트가 거센 파도를 일으킨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 가는 시점이다. 하지만 과연 세상은 그만큼 더 나아졌을까?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수전 팔루디가 1991년 ‘백래시’라고 명명한 남자들의 반격은, 2024년 현재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지형에서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스티프트: 배신당한 남자들』은 1999년 처음 세상에 나온 뒤 2019년 20주년 기념판이 출간된 수전 팔루디의 대표작이다. 시기적으로는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백래시』와 『다크룸』 사이에 위치하며,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신화를 불식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책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중요한 책이다. 앞서 『백래시』 한국어판 해제를 집필하고 『다크룸』을 우리말로 옮긴 문화평론가 손희정의 번역으로 ‘팔루디 연작’의 주요 저작 세 권이 국내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이 책에서 팔루디는 “아버지들이 물려준 세상에, 남성성이라는 신화에 배신당한(stiffed) 남자들은 어째서 여성들에게 분노할 뿐 사회에 저항하지는 않는가”라는 질문 아래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남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6년여에 걸친 방대한 취재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역사학·사회과학·심리학 등을 넘나들며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펼쳐 나가는 이 방대한 르포르타주는,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다가 어느새 지금 우리의 질문과 맞닿게 될 것이다.
★ 『백래시』와 『다크룸』의 저자 수전 팔루디의 또 다른 대표작 ★
성난 20대 남성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
방대한 취재와 인터뷰,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토대로
‘화가 난 남자들’의 뿌리를 찾아가는 르포르타주의 역작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는 1991년 첫 책 『백래시』에서 1980년대 미국의 신보수주의 물결을 타고 페미니즘과 여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가해진 공격 현상인 ‘백래시(Backlash)’를 조명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백래시』 출간 이후, 20세기 말 미국의 문화적 풍경을 조망하던 팔루디는 당시 언론에서 ‘남성성의 위기’라고 떠들어 대던 현상에 관심을 갖는다.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이 미국 전역을 한바탕 뒤흔들고 난 뒤, 집 안팎에서 설 곳을 잃은 남자들이 ‘남자다움’을 잃어 가고 있다는 신음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비행을 저지르는 소년들, 마약에 빠진 젊은 남성들, 직장을 잃은 무능한 아빠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끈 것은 ‘성난 백인 남성(angry white men)’으로 호명된 인구 집단이었다. 이들은 잃어버린 남자다움을 되찾기 위해 갖가지 폭력과 집단적 문제 행동을 일으키면서 사회의 보수화를 주도하는 공화당 지지 세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분노는 ‘남성의 권력을 박탈한’ ‘남성성을 거세한’ 여자들에게 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팔루디는 가정폭력 가해자 자조 모임을 참관하며 이 문제를 파헤친다. 처음에는 그도 (여느 페미니스트들이 진단한 바와 같이) 남자들이 여자들의 저항에 위기감을 느끼고 지배력과 통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자조 모임에 참여한 남자들은 여성을 구타할 때 스스로 ‘남자답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다음 이어지는 고백은 예상을 빗나갔다. “그때 느낀 권력감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수갑을 차기 전까지만 느낄 수 있었죠. 그러곤 다시, 나는 남자도 아니라는 기분에 사로잡혔어요.”
자신은 남자도 아니라는 기분. 무력하고 통제 불능이라는 느낌. 사실 가정폭력 가해자 남성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주된 정서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을 일상적으로 드러내거나 주변에 도움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사회가 남자들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남자라면 모름지기 ‘핸들을 쥐고 있는 사람’ 즉 주변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작부터 ‘개척자’ 이미지가 미국 남성의 표상으로 등극했고, 20세기에 들어서도 말보로 담배 광고에 나오는 카우보이,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 같은 고독한 영웅들이 ‘남자다움’의 모델로 군림해 왔다. 위기에 빠진 남자들에게 주어진 조언이라곤 ‘남성학’ 코너의 자기계발서에 적힌 ‘내 안의 왕’을 일깨우라는 말뿐이었다.
이쯤에서 팔루디는 묻는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은 이런 부당한 요구에 맞서지 않는 거지? 왜 남자들은 ‘남자다움’이라는 족쇄로 자신들을 옭아매는 국가와 문화에 저항하지 않는 걸까?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운동을 조직해 사회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비난의 화살을 애꿎은 여성에게, 흑인과 이주노동자에게, 성소수자에게 돌리는 걸까? “남자들은 왜 여자들이 더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위해 투쟁하는 것에 반대하는가”를 질문하는 대신, “남자들은 왜 그들 자신의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가”를 질문하기 시작한 순간 『스티프트』의 긴 여정은 시작된다.
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남자들
팔루디는 6년 동안 미국 전역을 떠돌며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만난 남자들은 대체로 베이비붐 전후 세대의 남자들이다. 이들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태어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일 때 어린 시절을 보냈고, 베트남전쟁 당시 청년기에 접어들어 징집 대상이 되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1990년대엔 대략 삼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 중반 나이였으니, 국가적으로 볼 땐 생산성이 가장 높은 인구 집단에 속했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팔루디가 실제로 목격한 현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군수공장의 이직 지원 사무소에서 이력서를 보내고 있는 해고자들, 과격한 ‘남성단체’ 모임에 참석해 설교를 듣는 남자들, 지역 미식축구팀의 충직하고도 과격한 팬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거나 반전운동에 참여했던 남자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에 있던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과 그 변두리의 포르노 배우들……. 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상대를 만나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상대가 ‘여자’이며 심지어 ‘페미니스트’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팔루디는 이 남자들의 분노 이면에 숨은 상처를 발견한다.
남자들은 저마다 쓰라린 배신(stiffed)의 기억을 안고 있었다. 이들은 남자다움의 가치를 물려주지 않은 아버지로부터, 가족 같은 회사로부터, ‘여러분이 이 나라의 미래’라고 부추기던 국가로부터, 단물만 빼먹고 버리는 엔터테인먼트 업계로부터 배신당했다. 어릴 적 이들의 아버지가 보여 준 창공을 가르는 인공위성은 그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아버지들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보병으로 참전해 전장의 참호 속에서 동료 병사를 돌보며 공동체에 이바지한 남자들이었고, 군수산업이 한창이던 무렵 생산직에 종사하면서 노동조합과 부하직원을 책임진 남자들이었으며, 사회적 쓸모야말로 남자다움의 지표라 굳게 믿던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들의 경험과 자산은 더 이상 쓸모를 인정받지 못했다. 평범한 졸병·소시민·노동자의 헌신을 높이 사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점차 화려한 조종사, 고연봉의 화이트칼라, 미디어에서 상품 가치를 인정받는 셀러브리티가 세상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전후 미국 사회를 휩쓴 이 같은 소비자본주의와 기업화, 상품화, 장식 문화는 아버지들 역시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각자도생이 벌어지는 비열하고 처절한 세계 한복판에 아들을 방치해 둔 채 떠나고 말았다.
이내 아들들은 아버지로부터, 직장으로부터, 국가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아버지나 기업, 국가에 대고 화를 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들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웠다. 갈 곳을 잃은 그들의 분노는 이제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꿰차고 있는 듯한 존재들, 힐러리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성공한 여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향했다.
남자들은 왜 분노하되 저항하지 않는가:
페미니즘이라는 열쇠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반페미니즘 기조가 유난히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른바 ‘이대남’이 화두로 떠올랐으며, 그들의 사회적 박탈감과 분노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여성 징병제’ 같은 공약을 해법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유리천장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금은 ‘여성 상위 시대’이며 오히려 남자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결혼과 취업 시장에서 위축된 남자들의 ‘기를 살려 줘야’ 출생률 저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2023년 말에 일었던 때아닌 ‘집게손가락 논란’에는 ‘청년’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남성을 조롱하고 음해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음모’를 주장하고 나섰다.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굳이 ‘양성평등’으로 고쳐 부르며 현 상황을 ‘남성과 여성 간에 벌어지는 성별 전쟁’으로 프레이밍해 온 정치 전략은 꽤나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과연 남자들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전략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정말로 ‘이대남’인 걸까?
클릭 장사를 하며 꾸준히도 정력을 뽐내던 이 남자는 내심 허영 가득한 속임수를 감춰야만 했다. (…) 더욱이 장식적인 남성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가 여성에게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연출한다는 점은 특히 중요하다. (…) 이 새로운 ‘남자 중의 남자’는 본인이 장식적인 윤리에 굴복했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여성성’에 호통치는 쇼를 선보인다. (…) 그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전리품을 자랑하고, 항시 실속 없이 거창하기만 한 통제력과 지배력을 과시함으로써 이런 허영을 추구해 왔다. 그가 완성해 냈다고 떠든 어마어마한 건설 프로젝트, 호텔, 카지노, 항공사 및 대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재정상 실패, 적자 행렬, 미지급 청구서, 그리고 임금을 받지 못한 익명의 노동자들(“평범한 소시민들”)에 관한 한 편의 호러물이었다. - 본문에서
여성성에 호통치며 실속 없이 돈만 많이 드는 프로젝트를 벌여 놓으면서, 정작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은 등한시하는 남성 정치인.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아닐 수 없다. 팔루디가 묘사한 ‘이 남자’의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이지만, 우리는 거기에 얼마든지 다른 이름을 넣을 수 있다. 그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한 편의 ‘호러물’은 지금 우리 현실과 닿아 있다.
팔루디는 남자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이 대통령 자리에 앉힌 저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인물인지를 회피하지 말고 똑똑히 보라고. 저 인물은 여러분을 편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여러분을 가장 하찮게 여기는 부류이며, 저 인물이 과시하는 남자다움이란 그저 미디어로 과대 포장된 껍데기일 뿐이라고. 실제로 본인은 전쟁에 참전한 적도 없으면서 전쟁담을 떠벌리며 청년 남성들을 베트남으로 내몰았던 로널드 레이건처럼, 저 도널드 트럼프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야성적인 남자들’ 역시 허풍선이 겁쟁이에 거짓말쟁이일 뿐이라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익숙한 집 안 풍경이 처음으로 또렷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불만이라는 오랜 질문으로 돌아가 ‘남자들이 어떻게 본인들의 문화에 배신당하고 있는지’를 목격했고, 이로써 또 다른 사실, 여자와 남자를 갈라놓은 것이 둘을 결속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여자들과 남자들의 공통된 기반은 정확히 그들이 그토록 자주 다퉈 왔던 개념, 바로 페미니즘에 있었다. 배신에 맞서 싸우려는 남자들에게 페미니즘은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만약 남자들의 투쟁이 성공한다면, 결국엔 페미니즘 역시 부활의 열쇠를 쥐게 될지도 모른다. - 본문에서
먼 길을 돌아 주어진 열쇠는 ‘또다시’ 페미니즘이다. 팔루디는 여자들에게 여자다움을, 남자들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감옥이 실은 소비자본주의라는 동일한 시스템임을 지적한다. 일찍이 여자들은 여성을 상품화하는 지배 문화에 맞서 싸웠고, 그 결과 “시장에서 물러나 장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됐다. 이제 여자들은 한때 여성에게 요구됐던 장식적 여성성이 남자들 또한 옭아매고 있음을 감지한다. 물론 1970년대 제2물결 페미니즘이 ‘가부장제’라는 명확한 적을 규정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의 남성들은 뚜렷한 전선을 구축하기가 어렵다. 사회적으로 남성이란 여전히 ‘지배자’이지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남자다움에 응해 주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 남자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야말로 남자들을 억압하는 기제가 아니라 도리어 해방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만 더 용기 내어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팔루디는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고개 숙인 남자’ ‘남성성의 위기’ 판타지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6년간 전국을 순회하며 신자유주의 아래 미국—모든 견고한 것이 자본주의 매트릭스 안으로 녹아들어 가고, 모든 것이 이미지 상품으로 전환돼 버리는 영토—을 살아가는 남자들이 느낀 환멸과 방향감각 상실을 조사한다. 그리하여 밝혀진 사실은, 1990년대 미국 남성들이 경험한 혼란이 결국 제2차세계대전 이후 풍요의 시대에 만들어진 남성성 신화와 그 좌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을 배신한 것은 다름 아닌 전후 미국 사회의 가부장주의적 자본주의였다.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스티프트(stiffed)’, 즉 배신당한 남자들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했다. (…)
미국에서 브로플레이크(broflake,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만났을 때 쉽게 화가 나는 청년 남성들)가 등장하고 트럼피즘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와 맞물려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 당대표와 대통령 후보가 등장했다. 안티페미니즘 백래시를 의제로 삼은 정치인들이 그 목소리를 정치 세력화하면 언론에서 그것이야말로 대의라며 떠들어 대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우리가 똑똑히 보게 된 것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을 ‘숏컷이니까 페미니스트’라며 폭행하는 남성의 등장이었다. 물론 이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2023년 한국에서 이른바 ‘인셀 범죄’에 해당하는 칼부림 사건이 가시화됐다는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미국에서 인셀이 등장하는 데 바탕이 되었던 것, 즉 “틀에 박힌 남성성을 구현한, 완전히 전능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관념”과 그로부터 탈각됐다는 불안 및 자포자기의 정서는 탈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티프트』라는 미국 현대 남성성의 원초경을 따라가면서 『파이트 클럽』의 ‘무명씨’가 어떻게 2014년의 엘리엇 로저(미국 인셀 범죄의 상징적인 인물)가 되고, 엘리엇 로저는 어떻게 2023년 대한민국 신림동에서 벌어진 칼부림 사건과 만나게 되는지, 그 이해의 폭을 연장하고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손희정
『다크룸』에서 수전 팔루디의 아버지는 딸을 ‘듣는 사람(listener)’이라 불렀다. “이봐, 리스너. 너는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지.” 폭력적인 가부장으로 살다 별안간 70대 트랜스젠더 여성이 되어 찾아온 자신에게 기꺼이 귀를 내어 준 딸.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은 딸을 향한 수줍은 감사의 표시이자 가장 적확한 묘사일 테다.
그렇다. 팔루디는 기꺼이 ‘듣는 사람’이다. 불가해하고 폐쇄적인 데다 심지어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어떻게든 그들 스스로 말하게끔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 『스티프트』는 그런 ‘듣는 사람’으로서의 팔루디의 여정이 시작되는 책이다. 『스티프트』에서 팔루디는 ‘화가 난 남자들’을 결코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살고 있는 구석구석을 찾아 6년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방대한 취재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불가해한 상대를 집요하리만치 추적해 들어가 끝끝내 그들의 삶을 설명해 보려는 여정. 어느 언론이 평했듯 『스티프트』는 그 여정의 끝에는 작은 희망을 남겨 둔다. “아직 실현되진 않았으나 그저 시간문제일 뿐인 희망, 어쩌면 우리가 진정한 ‘이해’에 가닿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 편집자 최윤지
이 책에 대한 찬사
20주년 기념판 서문: 버림받은 자들은 어떻게 트럼프 지지자가 되었나
1부 출발
1장 아들과 달과 별: 전후 남성성의 약속
2부 쓸모 있는 남자
2장 대단한 작업 그 자체: 조선소에서 우주로, 미국 일자리의 쇠락
3장 여자들이 강자다: 문제 소년의 문제는 무엇인가
4장 훌륭한 개는 언제나 충성스럽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야반도주
5장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남자다움을 향한 기독교도의 탐색
3부 사악한 제국
6장 모두 군인이 되어 아무도 남지 않았네: 누구도 피하지 못한 베트남전쟁
7장 거울 속의 괴물: 구조에 나선 환상 속 기병대
8장 불타 버린 집: 텍사스주 웨이코에서 일어난 화재
4부 자동차 보닛 장식물
9장 깡통에 든 남자: 대호황 시대의 문워커, 빈민가 스타, 크로스드레서
10장 텐트를 칠 때까지: 새로운 개척지에서의 죽음
5부 목적지
11장 뒷이야기: 아직 남아 있는 전사
12장 왕국의 반역자들
주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화가 난 남자의 뿌리를 찾아서
찾아보기
모임에서 알게 된 남자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나아갈 나침반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일자리, 집, 자동차, 가족을 이미 잃었거나 잃는 중이었다. 그들에겐 ‘무법자’ 혹은 ‘도망자’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는 따돌림당한다고 느꼈다. 그들이 무엇보다 간절히 바란 것은 순종하는 것, 소속감을 갖는 것, 사회가 부여한 남자로서의 역할에 정확히 부합되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들은 현대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아내 구타자’였다. 인구통계학적 연구들에 따르면 이들 ‘아내 구타자’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성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무력하다는 감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성역할 규범이 아니라면 기댈 곳이 없다. - 1장 아들과 달과 별
사실 아버지들은 전쟁 기간에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 주었음에도, 전쟁이 끝난 뒤엔 이미지에 기반한 상업이 지배하는 세계에 무심코 아들들을 내다 버렸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이유가 있었다. 대공황으로 수년간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혹독한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들이 남겨 놓은 것은 그 아들들이 전통적인 남자다움을 전혀 발휘할 수 없는 문화였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진짜로 남겨 준 건 군인의 윤리가 아니라 지아이 조 ‘액션피겨’였다. 주요 특징이라곤 옷에 액세서리를 다는 능력밖에 없는 12인치로 ‘줄어든 사나이’ 인형 말이다. - 1장 아들과 달과 별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음에도 조선소 남자들은 이상하리만치 복수심이 없었다. 정부가 당신을 그렇게 취급했는데, 킨케이드의 사무실에 앉아 일에 몰두하는 게 힘들진 않습니까? 나는 맥브라이드의 사무실에 있었던 남자들에게 물었다. 결국에 가서 작업 속도를 줄이고 태업을 하자는 건 감원 대상자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남자들은 내 질문에 혼란스러워했다. 밥 토머스가 말했다. “오, 안될 일이죠. 여기 일하는 남자들은 스스로 ‘이봐, 이건 우리 일이야. 항상 하던 것처럼 일을 합시다’라고 했어요. 모두가 가진 결기가 대단했습니다.” 마티 허낸데즈가 덧붙였다. “우리에겐 다른 길이 없었어요. 우리는 자긍심을 가지고 마무리하기로 했죠. 그게 우리니까요. 우리의 정체성이죠.” - 2장 대단한 작업 그 자체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만난 그 많은 남자가 여전히 아버지를 되찾음으로써 남자다움을 얻으려 애쓰고 있었다. (…) 그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유산을, 돈이 아닌 노하우를 믿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몸에 완전히 익혀 아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종의 비밀스러운 지식, 아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는 아버지의 눈빛에서 ‘아, 내가 배웠구나’ 하고 알 수 있게 되는 그런 종류의 지식 말이다. 그들은 세심한 아버지의 시선을 통해 성인 남성 사회로 나아가는 자신의 현 단계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책 작업이 진전될수록, 그리고 1990년대라는 시대와 남성의 딜레마가 진전될수록 남자들은 아버지에 대한 탐색 자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많은 남자가 자신이 최우선으로 찾던 대상을 시야에서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들의 여정은 지도에서 벗어났다. 남은 것은 도로뿐이었다. 하지만 그 도로는 실제 66번 국도처럼 할리우드에서 끝나 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말 그대로. 그리고 더 많은 이에게는 은유적으로. - 10장 텐트를 칠 때까지
스탤론이 원한 건 블루스크린에서 가상의 위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출연하는 영화에서 정말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궁극의 영화란 노동력에 관한 영화입니다. 일상적인 노동이죠. 노동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우리 존재의 핵심입니다.” 스탤론은 이전 세대의 ‘액션’영화라든지 서부극, 또는 제2차세계대전 영화에서 존 웨인이나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 스티브 매퀸 같은 남자 배우가 연기한 남성 영웅은 “시스템의 일부”였다고 했다. 그들은 “군대를 이끌”며 “열심히 일하는”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상”이었다. 그러나 스탤론 세대의 액션 영웅은, 그가 람보와 그 아류를 두고 말한 것처럼 모두 혼자였고 “남자 한 명으로 구성된 군대”였다. “우리는 미국을 위해 싸우지 않아요. 우리는 그저 이 나라의 배경이나 미국 유니폼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고, 사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거죠. 그 남자는 혼자입니다. 내가 내 나라가 되어야만 하고요. 내가 나 자신의 성채가 되어야 하죠. 아무도 내 뒤를 봐주지 않습니다.” - 11장 뒷이야기
남자들은 왜 정형화된 남성 모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가. 지금껏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상투적인 답변으로는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일부 페미니스트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남자들은 단순히 ‘권력의 고삐를 포기’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고삐는 어쨌거나 이미 그들 대부분의 손에서 벗어났다. 프라미스키퍼스와 ‘야성적인 남자’ 수련회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남자들은 단순히 자기가 고통과 궁핍을 표현하면 남성 규범을 위반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이 상업 영역에서 돈이 되는 시대이니만큼, 남자들이 고통스러운 느낌을 표출한다 해도 그건 토크쇼 이야깃감 이상의 엄청난 타격이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나는 권력이 있고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상상하라며 남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남성의 반란을 가로막고 있긴 하지만, 이는 더 근본적인 장벽에 가려져 있기도 하다. - 12장 왕국의 반역자들
탁월하고 중요한 책. (…) 팔루디의 취재력과 문학적 역량이 함께 숨 막히는 자신감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난생처음 시도하는 방식으로 팔루디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그렇게 엮인 풍부하고 복잡한 태피스트리는 서구 가치 체계 전반을 재고하게 한다. (…) 팔루디는 지난 30년간 성별을 갈라놓았던 흑과 백, 선과 악, 남과 여라는 이분법을 타개하고자 먼 길을 떠난다. —《타임》
역사학과 사회학,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와 사회 연구를 풍부하게 담은 이 책은, 우리가 막 떠나온 20세기가 어떤 세기였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신뢰할 만한 자료가 되어 줄 것이다. (…) 팔루디는 남성과 여성의 삶에서 인간의 경이로움, 인간의 실패, 인간의 가능성을 본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한 끝에, 『스티프트』는 최종적인 기약을 남겨 둔다. 아직 실현되진 않았으나 그저 시간문제일 뿐인 희망, 어쩌면 우리가 진정한 ‘이해’에 가닿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개별 사례와 개개인의 면면을 통해 보다 광범위한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엮어 낸다. 일반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을 연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 『스티프트』는 우리 시대의 병리학이다. —《워싱턴포스트》
제2차세계대전 이후 격동의 수십 년간 남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섬세하면서도 연민 어린 시선으로 평한 책. 공정한 시각과 열정적인 취재가 돋보인다. —미치코 가쿠타니, 《뉴욕 타임스》
『스티프트』의 가장 큰 단점은 이것이다. 이 책을 읽는 즉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옷깃을 붙든 채 ‘이 책을 읽으세요! 이 책에 관해 이야기 좀 나눠야겠어요!’ 하고 간청하고 싶어진다는 점. —《샌디에이고유니언트리뷴》
진지하고도 인도적인, 감탄스러운 책. 이 책은 노동자이자 부모이며 시민이었던 남자들을 사회가 어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는지 기록한다. —《슬레이트》
6년에 걸친 공격적인 취재와 그 결과에 생기를 불어넣는 놀라운 재능의 산물. 생생한 현장감이나 세심한 관찰이 부족하다며 이 책을 내려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북리뷰》
우리 남자들의 꼬락서니를 보면서도 우리를 좋아해 주는 한 여성이 쓴 눈부신 책. —CBS 뉴스
남성다움의 정의가 의문에 부쳐진 시대에 과연 자기 정체성을 탐색하는 미국인 남성으로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아가 어떤 느낌인지, 남자건 여자건 양쪽 모두가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심사숙고를 거쳐 세심한 취재를 바탕으로 잘 쓰인 책. —《콜럼버스디스패치》
팔루디는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킨 『백래시』로 유명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남자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 『스티프트』는 공적인 대화를 과대 대표해 온 ‘비난의 정치’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애틀랜타저널앤드컨스티튜션》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는 근 수십 년 새에 등장한 여성 관련 도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이었다. (…) 하지만 『스티프트』는 『백래시』를 훨씬 뛰어넘는다. —《뉴욕리뷰오브북스》
수전 팔루디는 겁 없는 탐색 작업, 취재 인터뷰, 페미니즘적 회의주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민감한 포착을 바탕으로 20세기 말 미국 사회의 경제적·문화적 압박에 직면한 남자들의 분노를 설득력 있게 해석해 냈다. (…) 팔루디는 굴하지 않는다. —《시카고트리뷴》
페미니즘이 팔루디의 렌즈이자 나침반이라면 저널리즘은 괄목할 만한 주 종목이다. (…) 그는 자신이 조우하는 ‘성난 백인 남성’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듣고, 그들이 전하는 미묘한 어감과 단서를 솜씨 좋게 다룬다. —존 레너드, 《뉴스데이》
팔루디는 위험한 주제를 용감하고 훌륭하게 다뤄 왔고, 『스티프트』는 한 사람의 저명한 페미니스트가 남성성을 바라보는 반가운 시선을 보여 준다. —《시카고선타임스》
『스티프트』에서 팔루디는 전례 없던 방식으로 남성성 구석구석에 페미니즘의 통찰을 비추는 획기적인 논의를 선보이고 있다. (…) 이 모든 소년 및 남자에게 그녀는 사려 깊고 연민 어린 귀를 빌려준다. —《보스턴글로브》
난센스를 뚫고 나아가고, 남자들 스스로 말하게끔 하며, 그들이 하는 말에서 독창적이고 공감 어린 통찰을 이끌어 내는 뛰어난 책이다. 브라보. —《커커스리뷰》
『스티프트』는 20세기 미국 남성이 경험한 배신을 치밀하게 논증한 본보기일 뿐 아니라 놀라운 공감대를 선보이는 작업이기도 하다. (…) 팔루디는 남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혁명의 청사진을 위해 첫 밑그림을 그려 낸 것인지도 모른다. —《시애틀위클리》
마음을 사로잡는 (…) 놀라운 사례연구. 결국 팔루디는 우리에게 ‘프라미스키퍼스’나 ‘100만 남성 행진’ 같은 대규모 집회가 단순히 역사의 표면에 등장한 파문이 아니라 표면 아래서 일어나는 심각한 지진의 전조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빌리지보이스》
개인을 그려 낸 르포르타주의 역작. 눈부신 글 솜씨와 엄청난 설득력을 갖춘 이 책은 철저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통찰로 가득하다. —《시애틀프레스인텔리전서》
‘남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롭게 말할 역사적 기회를 남녀 모두에게 제공한다. —《하트퍼드쿠란트》
강의실이나 TV와 라디오 토크쇼는 물론, 부엌과 서재 및 침실에서도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수전 팔루디의 『스티프트』를 읽고 토론해야 한다. —《포트워스스타텔레그램》
몰입감 있고 도발적이다. (…) 팔루디는 미국 남성의 꿈의 배를 전복시킨 많은 사건을 세심하게 또 격렬하게 추적한다. (…) 완전히 매혹적이고, 완전히 흥미로우며, 완전히 설득력 있다. —《탬파트리뷴》
『스티프트』에 관한 멍청한 리뷰도 있지만(‘세상에, 페미니스트가 남자들을 위해 할 말이 있다고?’), 좀 더 똑똑한 서평가들은 이 책이 신호탄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그리고 ‘단지 혼란스러울 뿐인 사람들’에게 유익한 책이다. —몰리 이빈스
정곡을 찌른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지은이 | 수전 팔루디(Susan Faludi)
1981년 하버드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저널리스트로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기고해 왔다. 1991년 미국 대형 슈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의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직원들을 취재해 그해 해석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같은 해 출간된 데뷔작 『백래시』에서 1980년대 미국 신보수주의의 물결을 타고 페미니즘과 여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가해진 공격 현상 ‘백래시’(반격)를 조명하여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이 책으로 1991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로서의 끈질긴 취재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스티프트』와 『테러 드림(The Terror Dream)』 『다크룸』으로 이어지는 책 세 권을 더 집필했다. 2007년 출간된 『테러 드림』에서는 9·11 사태에 대한 미국인들의 ‘젠더화된’ 심리적 반응을 고찰했고, 2016년에 출간된 『다크룸』에서는 폭력적 가부장에서 70대 트랜스젠더 여성이 되어 나타난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뤘다. 『다크룸』은 커커스리뷰상을 수상했으며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1999년에 초판이 출간된 두 번째 책 『스티프트』는 전통적인 남성성의 붕괴와 이로써 미국 남성이 직면한 위기를 다룬 책으로, 현대 미국 사회에 등장한 ‘성난 백인 남성’의 뿌리를 찾아가는 방대한 르포르타주다. 집요한 취재와 통찰,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유머가 배어나는 이 책은, 2019년 20주년 기념판으로 재출간되어 오늘날 사회적 보수화와 ‘인셀’ 현상을 맞닥뜨리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성찰을 던진다.
옮긴이 | 손희정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미디어연구X영상문화기획 단체 프로젝트38 멤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했으며, 수전 팔루디의 영향 아래 페미니즘 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다시, 쓰는, 세계』 『페미니즘 리부트』 등과 공저 『제로의 책』 『도래할 유토피아들』 『원본 없는 판타지』 등이 있다. 『다크룸』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호러 영화』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백래시』에 해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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