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북아프리가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365~369년 마디우라에서, 371~374년 카르타고에서 라틴 문학과 수사학 등을 공부하고, 376년부터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373~382년 사이에 마니교도로 지냈다. 383년 로마로 갔으며, 이듬해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가 되었다. 그해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386년 회심의 순간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387년 밀라노에서 세례를 받았다. 391년 히포에 도착해서 사제가 되고, 395년 주교가 되었다. 396~398년 『고백록』을 썼다. 403~411년 도나투스주의자들과 ‘교회의 본질’에 관해, 그리고 412~421년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 ‘인간의 본성’에 관해 논쟁했다. 413~426년 『신국론』을 썼다. 430년 8월에 히포에서 생을 마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5세기에 활동한 신학자이지만 그의 영향은 단순히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구 문명의 토대가 그리스도교이며, 서구 그리스도교 사상의 주춧돌을 놓은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그가 삶의 여정에서 만난 여러 사상과 종교, 특히 플라톤에 기초한 헬레니즘과 바울로에 기초한 헤브라이즘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직조한 결과물이다. 그는 중세 라틴 사상의 틀을 구축했으며, 이후 서구 그리스도교와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어떤 고대 사상가보다 월등히 많은 저작을 남겼지만, 논리적이고 조직적인 사상 체계를 남긴 것은 아니다. 그의 평생의 화두는 ‘참된 행복의 추구’였다. ‘참된 행복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했는데, 그 대답은 ‘하느님 안에서 행복의 추구’였다. 그는 신앙과 이성의 상호 관련성을 모색하면서,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고 고백했다. 사상사에서 그의 위상은 ‘저수지’나 ‘문’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고대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 그리스도교 신학이 흘러 들어간 저수지였으며,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의 거의 모든 물줄기는 그 저수지에서 나왔다. 그는 고대 세계를 마감하고 중세 세계를 시작한 사람으로, 고대와 중세를 가르는 문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고백록』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 『고백록』은 396~398년에 기록된 열세 권의 책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문학 작품이다. 도대체 고백할 것이 얼마나 많아 열세 권씩이나 썼을까? 이 책을 왜 그렇게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칭찬할까?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세례,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까지 그의 삶에서 내적 발전 과정을 담고 있기에 이 책은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고백록』은 ‘객관적’인 자전적 보고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다. 하느님에게 보내는 산문시 형태로 쓰인 『고백록』의 구조는 다소 혼란스럽다. 1~9권까지는 자서전적 내용인데, 10권부터 갑자기 하느님과 창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책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엇을 ‘고백’하고자 한 것일까? 아우구스티누스는 말 년에 쓴 『보정록』에서 『고백록』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다. “나의 선행과 악행에 관학 『고백록』 열세 권은 정의롭고 선하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행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고백’과,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에 대한 ‘인정’ 두 가지를 뜻한다. 따라서 『고백록』의 1~9권에서는 개종 전까지의 그릇된 행동에 대한 고백을, 10~13권에서는 하느님과 창조에 대한 찬미를 다룬다. 내용 면에서 두 부분으로 나뉠 뿐만 아니라, 전개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1~9권은 자서전적 형식으로 서술하며, 10~13권은 주교이자 성서 주석가로 당시 마음의 상태를 기록했다. 그런데 『고백록』에서 개인의 이야기와 창조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이야기가 모든 피조물에 해당하는 축소판이라고 생각했다. 타락한 피조물이 집을 그리워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 ‘회심’한다는 이야기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9권까지 방탕한 아들이 경험했던 것을 개인적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그런 다음에는 앞서 말한 것을 우주적 차원에서 전개한 것이다. 즉 10~13권은 앞서 자서전적으로 기술한 주제에 대한 신학적 표현인 셈이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해를 위한 첫 책이지만, 그 내용은 원숙한 사상을 담고 있다. 삶의 자리가 바뀌면 세계관이 어떻게 변하는지, ‘삶과 세계관의 관계성’에 주목해 『고백록』을 읽을 필요가 있다. 『참된 종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주교가 된 395년을 기준으로 삼을 때 전기 저작에 해당하는데, 이는 『고백록』 이전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389~390년 타가스테에서 쓴 책으로, 당시까지의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요약이며 이후에 전개될 사상 체계의 백서라 할 만하다. 『참된 종교』는 ‘마니교를 떠난 이유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며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우주를 통치하는 유일한 하느님을 경외하는 종교를 옹호하고 이교도를 비판하고자 이 책을 썼다. 『참된 종교』는 그가 훗날 여러 저작에서 다루게 될 주제인, 철학과 종교의 관계, 성서와 이성의 관계, 역사에 대한 철학적 해석, 육적인 인간과 영적인 인간이라는 범주화, 인식론의 근간이 되는 내적 조명과 진리로의 귀환, 회의를 통한 의심의 극복 등을 다룬다. 언뜻 보기에 변증서 같지만,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대화를 통해 플라톤 철학과 그리스도교 사상의 조화를 시도한 사상서라고 볼 수 있다. 신학자의 관점으로 본 중세 ‘철학과 종교의 관계’는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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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권으로 이루어진 『신국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14년(413~426)에 걸쳐 쓴 책으로 그리스도교의 역사 철학을 담는다. 내용상 1~10권을 1부로, 11~22권을 2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로마의 쇠퇴 원인을 그리스도교로 돌리는 비난에 대한 변호이며, 후반부는 로마 몰락의 대안으로서 ‘두 도성’의 개념을 통해 자신만의 역사 해석 틀을 제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왜 쓰게 되었을까? 410년 로마가 아리우스파 그리스도인 알라리쿠스에 의해 약탈당하자, 이는 로마가 전통적으로 섬겼던 여러 신을 무시하고 그리스도를 옹호한 데서 발생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북아프리카로 피신해 온 로마인들은 그곳 지도자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그러한 비판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고, 『신국론』은 이에 대한 응답이다. 전반부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질문은 세 가지이다. 첫째, 로마의 몰락은 그리스도인의 잘못 때문이며, 로마의 흥성은 이교 신들의 보호 때문인가? 둘째, 만일 로마의 흥성이 이교주의 때문이 아니라면, 그것을 주도한 주도적인 힘은 무엇인가? 셋째, 어떤 이교의 구조가 진정한 영적 종교인 그리스도교에 대항해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자기주장을 펼 수 있을 것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번영이나 고난을 다신 숭배나 그 의식을 금지한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반박하며, 다신 숭배와 희생 제의가 죽음 후의 삶에 유익하다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을 편다. 따라서 1부는 그리스도교 호교론의 성격이 강하다. 후반부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를 재해석하는 대안으로 ‘신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이라는 두 도시 개념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심판의 시기이며 시간과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는데, 이때 ‘인간의 도성’에는 징벌이 ‘신의 도성’에는 평화와 축복이 있을 것을 강조했다. 그는 두 도성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둘을 모순되고 적대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이 두 도성에는 연결 고리가 있는데 공통 목표인 평화가 그것이다. 『신국론』은 서구 최초의 역사 철학서로, 이후 중세 교회 이론이나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 또는 문화와 관계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전반적인 역사의 틀, 즉 창조부터 계시록까지 역사 구도를 짜고, 그 중간에 필요한 역사 기록을 끼워 넣는 역사 서술은 중세에도 줄곧 지속되었다.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서구 역사 철학의 구조가 무엇인지 집중하여 읽어 볼 만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철학의 관계를 다룬 『그리스도교 교양』을 제안한다. 이 책은 ‘지식을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의 첫 번째 주제가 ‘하느님과 인간의 영혼에 관한 탐구’라고 한다. 그의 철학에 대한 관심은 이론적 체계의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영혼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지식을 통해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다. 즉 영혼의 안정과 행복을 얻는 것이 지식 추구의 목적이다. 그는 신학이나 철학, 또는 종교를 실제적이고 실존적인 관심에서 인간의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접근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복은 무엇에 달려 있는가? 인간의 행복은 하느님 자체인 진리의 추구에 따라 달성되므로 진리와 행복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에게 신앙과 이성은 대립적 요소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속에서 통합된다. 『그리스도교 교양』에서는 ‘신앙과 이성’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질문하면서 읽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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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계로 다소 전문적이긴 하지만 신학적 주제의 책을 읽어 보기 바란다. 『삼위일체론』은 신학적 주제를 가장 깊이, 포괄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라틴 그리스도교 신학의 패러다임을 확립한 책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을 14년(399~412)에 걸쳐 열두 권으로 출판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이전에 쓰인 삼위일체에 관한 모든 책을 읽었다. 그의 사상이 신플라톤주의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삼위일체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1~7권의 전반부는 성서에 나타난 삼위일체 사상을 검토하고, 정통 교회와 신학자들이 전승해 온 삼위일체 교리를 개괄한다. 후반부인 8~12권에서는 심리학에서 빌려 온 일련의 유비를 가지고 ‘하나이면서 셋’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즉 전반부는 삼위일체에 관해 성서와 기존의 신학적 논의의 검토이며, 후반부는 이 주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에 대해 무엇이라고 주장하는가? 첫째는 삼위의 단일성과 다원성에 대한 것이다. 그는 삼위의 본질은 완벽하게 동일하기에 통일성을 가지며, 삼위의 다원성은 세 위격이 하나의 신성 안에서 있어 본질이 동일하지만 동시에 각자 서로 맺는 관계에 의해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 모두의 영이다. 이것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라는 두 근원에서 나왔다는 ‘이중 출현’을 강조한 것이다. 이 주장은 서방 교회의 규범이 되지만, 이후 1054년에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분열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셋째, 성령을 ‘사랑’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이다. 사랑만이 둘을 하나로 묶어 주며, 성령은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동시에 그는 신적 삼위일체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삼위일체의 흔적이 있는데, 마음과 지식과 사랑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인간의 사유 역시 기억과 이해, 의지라는 삼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삼위일체론을 심리학적 유비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의 독특한 점이다. 일반인에게 상당히 어렵고 지루할 수 있지만 ‘삼위일체론의 구조’와, ‘심리학적인 유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책장을 넘겨 보기를 바란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악의 문제이다. 『자유 의지론』은 악의 문제, 특히 인간의 도덕적인 악의 문제를 다룬다. 악의 문제는 사상사를 통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물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악하게 행동하는 이유’를 다루면서 ‘악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를 묻는다. 그에 따르면, 악의 기원은 자유 의지이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에보디우스와 나눈 대화집으로, 원래 악의 기원을 하느님에게 놓고 하느님이 비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니교에 반박하기 위해 쓴 것이다. 하지만 이후 자유 의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보다 세밀한 논증을 2권과 3권에서 제시한다. 1권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는가? 주었다면 왜 주었는가?’를 질문한다. 2권에서는 하느님의 존재 증명과 관련한 물음과, ‘하느님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선의 근거인가’라는 물음 그리고 자유 의지에 대한 물음을 다룬다. 3권에서는 이성을 가진 피조물에게 있어 악의 기원이 무엇인지 논하고, 영혼의 기원과 창조 등에 대한 문제, 어린이들의 고통과 죽음, 유아 세례,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해 논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자유 의지’와 ‘악’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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